[성모경의 공간의 문장] 생활을 만나는 도시, 여름 건축투어에서 대구를 읽다

  • 성모경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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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0 14:46  |  발행일 2026-09-11
리우 지아쿤이 설계한 웨스트 빌리지. 한블록 전체를 감싸는 대규모 건축물의 중앙을 비워 녹지공간, 생활공간으로 채웠다. <본인 촬영>

리우 지아쿤이 설계한 웨스트 빌리지. 한블록 전체를 감싸는 대규모 건축물의 중앙을 비워 녹지공간, 생활공간으로 채웠다. <본인 촬영>

뜨거운 여름이면 건축가들은 여행을 떠난다. 평소 보고 싶었던 건축, 도시를 찾아 작고 큰 규모의 건축 투어단이 꾸려진다. 언제든 혼자라도 떠날 수 있는 국내 건축 투어보다 조금 더 본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이면 건축가들의 SNS 속 다양한 건축 투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지난해 여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25년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중국 건축가 리우 지아쿤(刘家琨·Liu Jiakun, 1956~)의 건축물을 보기 위한 '지아쿤 건축 투어단'에 끼어 중국 쓰촨성 청두시(成都市)를 다녀왔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소박하고 겸손한 공공건축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며, 건축물의 지역성, 건축가가 제안하는 그야말로 삶을 담아내는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투어 후 리우 지아쿤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전통성, 지역성, 공공성을 주제로 투어단의 작은 세미나도 있었다.


지아쿤은 건축가이자 소설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건축물들에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사회적, 정치적 배경 때문인지 공동체의식과 장소성이 넘치는 그의 건축물들은 끊임없이 이웃과 도시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가득했다. 2025년도 프리츠커상 위원회는 "도시는 보통 기능을 분리하려고 하는데, 리우 지아쿤의 건축은 반대로 도시와 삶의 섬세한 균형을 유지한다. 건축물, 도시 인프라, 조경, 공공 공간을 동시에 창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의 작업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대에 도시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도시를 만드는 일에서의 공공건축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바로 도시, 공간, 사람 간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박하지만 소중한 견학의 기회였다. 참여한 건축가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지아쿤이 이룬 지역성, 공공성을 대구 건축에서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토론하며, 서로에게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졌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올여름 건축투어는 일본 이사카와현 가나자와시 건축 투어단을 선택했다. 일반인들에게보다 건축가들에게 훨씬 더 유명한 도시 가나자와는 그래서 아직 접근성이 떨어진다. 대구에서는 오사카를 시작으로 버스나 기차로 또 한참을 가야 하는 곳이다.


건축가로서 금을 씻던 늪(金洗沢), 가나자와(金沢)에서 눈을 씻고 마음을 씻고 오기를 원했다. 투어 예상 건축물 중 단 하나도 건너뛰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강행군을 각오했지만 내 각오보다 내 발바닥은 단단하지 못해서 매일 이게 한계구나 싶을 때쯤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아쉽지만 좋은 건축물을 보면서도 눈과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투어는 그런 강행군이 기본이긴 하다.


21세기 미술관. 경계를 지운 투명한 외벽 속에서 움직이는 관람객들이 새로운 경계를 만든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21세기 미술관. 경계를 지운 투명한 외벽 속에서 움직이는 관람객들이 새로운 경계를 만든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가나자와를 다녀온 많은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 걸 보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이유가 떠오른다. 가나자와는 관광도시라고 하기엔 생활이 가깝고, 생활도시라 하기엔 매력적인 여행지이기 때문에 내 삶을 옮겨놓기에 좋은 도시로 느껴지는 것 같다. 도시 중앙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겐로쿠엔(공원)이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허물며 도시 속에 액체처럼 흘러들어 있는 데다가 높낮이가 많은 지형을 최대한 그대로 활용한 도시라 녹지·물·자연·역사·도시가 입체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듯했다.


이런 도시에서 모든 건축가들이 열광하는, '경계를 지운 열린 미술관'을 주요 콘셉트로 하는 '21세기 미술관'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보기 전부터 이미 너무 익숙한 가나자와 건축의 상징인 21세기 미술관은 그 유명한 조감사진으로 상상했던 거대한 원형의 자태보다 눈높이로 걸으며 보는 장면들이 오히려 세심하고 다채로웠다. 사람들로 가득 찬 통로와 전시관들을 지나치며 보이는 사이사이 공간에 앉아 쉬는 사람들은 유리벽 너머 푸른 마당을 배경으로, 그리드 된 내부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건축가가 애써 경계를 지운 미술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그 경계에 있더라는 아이러니.


한 학기 설계 수업이면 최소 2명씩은 가져오는 '골목을 콘셉트로 OO한 작품'. 이를 위한 레퍼런스 속에서 보던 21세기 미술관. 골목은 평면에서 보이는 전시관과 전시관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전시장 사이를 관람하는 그 전시 순로인 것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일본의 선(禪·ZEN) 철학을 물과 함께 보여주는 스즈키 다이세츠 기념관. <본인 촬영>

일본의 선(禪·ZEN) 철학을 물과 함께 보여주는 스즈키 다이세츠 기념관. <본인 촬영>

스즈키 다이세츠 기념관이 보여주고자 했던 일본의 선(禪·ZEN) 철학은 건축물과 함께 디자인된 어두운 회랑과 수변정원, 매립된 설비와 부재들, 일정 시간마다 인공적으로 파동을 일으키는 물방울, 정확한 각도로 정확한 장면의 물의 크기를 보게 만든 프레임보다, 안쪽 정원에서 거친 솔로 낡은 돌계단의 이끼를 말없이 닦고 있던 어느 노인의 무념무상한 얼굴에서 더 잘 보이는 듯했다.


표절인지 오마주인지가 더 많이 언급될 만큼 건축가들이 한번쯤 오마주(?)해보고 싶은 요시로 부자의 건축관은 그 외피의 닮음보다 공간의 의도를 잘 '오마주'했다면 모두 용서해줄 수 있지 않을까. 너그러운 맘이 드는 좋은 건축물이었다. 특히 진입부의 좁은 공간에서 관람객의 동선을 유도하는 계단과 오픈부의 개방 공간으로 쏟아지는 빛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라면 과연 이런 공간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전과 편의, 수많은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건축가가 의도했던 공간의 긴장감은 조금씩 평준화되곤 한다. 규정은 도시를 안전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공간이 가진 작은 모험까지 조심스럽게 지워 버리기도 한다. 좋은 건축은 결국 그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올 일은 없을 테니 열심히 보고 가야지 했던 가나자와 건축 투어를 마무리하며, 나는 어느새 가나자와 근처 도시로 들어오는 직항 노선을 검색하고 있었다. 건축물을 다 보았는데도 이상하게 다시 오고 싶었다. 아마 이번에는 건축보다 그 도시의 생활을 조금 더 천천히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원래 유명한 장소를 확인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장소를 소비하는 여행보다 그 도시의 일상을 경험하는 여행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대구 역시 조금씩 그런 도시가 돼가고 있다. 떡볶이페스티벌과 치맥페스티벌, 골목투어와 커피투어, 서문시장과 앞산 카페거리처럼 특별한 건축물 하나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된다. 관광객은 더 이상 도시를 구경만 하지 않는다. 잠시 그 도시의 생활을 빌려 살아본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좋은 건축은 사진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쉬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노인이 벤치에 앉아 햇볕을 즐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가나자와에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도 유명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끼 낀 돌계단을 아무 말 없이 쓸고 있던 노인의 뒷모습이었다.


그래서 좋은 도시는 유명한 건축물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건축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시민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여행자에게는 가장 특별한 풍경이 되고, 여행자는 그 풍경을 다시 자신의 도시로 가져간다. 건축가인 나에게 건축투어는 결국 건물을 보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도시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담아내는지를 배우러 가는 여행이었다.


단체 투어단이 넘치는 도시도 좋겠지만, 도시 속 시민의 삶과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스쳐가는 도시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대구는 이미 그런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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