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862년 9월11일 미국 작가 윌리엄 시드니 포터가 태어났다. 윌리엄 시드니 포터?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면 좀처럼 기억하지 못할 이름이다. 필명이 오 헨리이다. 오! 헨리!!
오 헨리는 이름의 실존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이름 문제로 오 헨리에 비견할 만한 문인은 조지훈이다. 본명이 조동탁이지만 모두들 조지훈은 알아도 조동탁은 모른다. 동탁? 후한 말기에 수양아들 여포에게 참살당하는 바로 그 독재자 아닌가!
같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도 엇비슷한 사례이다. 본명이 박영종인데 다들 박목월로 기억한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어떤 중학생이 "'나그네'를 쓴 시인은 누구입니까?"라는 교내 시험에 '박영종'이라고 답을 썼다가 틀렸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할 때 쉬어가면 어떠리"라는 시조에 황진이가 중의법(重義法)으로 등장시킨 '벽계수(碧溪守)'도 본명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벽계수(1508∼?)는 세종의 서자 영해군의 손자로, 이종숙(李終叔)이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종숙의 생애는 크게 대단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천하의 황진이가 마음을 주었다. 연애란 모름지기 주관적인 일이므로 이종숙의 무엇에 황진이가 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벽계수의 본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무방하다는 사실이다.
답안지에 '박목월'이 아니라 '박영종'을 기입한 학생은 그만큼 점수를 잃어 마땅하다. '나그네'는 박영종이 아니라 박목월이 지은 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명함 등에 이름과 직업을 밝혀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공언할 때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몇 해 전, 도로변에 비석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광경을 보았다. 임란 때 의병장 또는 관군 장수로서 왜적과 분연히 싸운 자랑스러운 가문의 문중 묘역 앞이었다. 하지만 전문이 한문인데다 이름은 없고 호만 새겨져 있었다. 과연 몇 사람이 그 비석군에서 교훈과 감동을 얻을 수 있을까?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름을 쓸 일이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나?'라는 말도 있듯이 그럴 듯한 호를 자칭한다고 해서 나의 품이 저절로 격상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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