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훈정 김천시보건소장.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보건소의 역할 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보건행정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상시적 건강관리를 통한 수명 연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2024년 말 경북도 통계에 따르면 김천시는 이미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특히 읍·면 지역의 고령화율은 동(洞) 지역보다 월등히 높아 만성질환 관리와 의료 접근성 확보가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김천시보건소가 단순 진료를 넘어 예방 중심의 '통합적 건강관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부임한 황훈정 김천시보건소장(개방형 직위)은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온 치과의사이자 일선 보건소에서 경험을 쌓은 보건행정가로서, 임상 및 보건행정 경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경북도 최초로 연속혈당측정기(CGM)를 활용한 건강관리사업을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를 공공보건에 접목하고, 노년기 발달과업의 핵심인 '웰다잉' 사업에 착수하는 등 시대가 요구하는 김천시보건소로의 기능 전환을 주도하는 황훈정 소장을 만나봤다.
▶임상경험을 쌓은 의료인이자, 보건행정 전문가로서 보는 지역 보건사업의 주요 현안은 무엇이며 김천시 보건행정의 방향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역보건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초고령사회에서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수명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오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질병이나 돌봄에 의존하는 기간을 줄이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스스로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의 증가, 치매와 정신건강 문제, 공중보건의 감소에 따른 농촌지역 의료공백, 도농 간 의료접근성과 의료 자원 격차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김천은 혁신도시와 원도심, 농촌지역이 공존하는 도농복합도시이기 때문에 지역과 연령에 따라 건강수요가 상당히 다르다. 김천시보건소는 이에 대응해 임신·출산과 영유아 건강관리부터 아동·청소년, 성인,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보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성질환 예방관리, 신체활동과 영양, 구강건강, 정신건강, 치매관리, 방문건강관리, 감염병 예방 등 시민의 삶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을 많이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연결하고 고도화해 시민의 실질적인 건강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김천시보건소가 연속혈당측정기(CGM)를 활용한 건강관리사업을 도입한 것도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일회성 혈당 측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식과 운동 등 생활습관에 따른 혈당 변화를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질병이 발생한 뒤의 치료만으로 건강을 지키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경험했다. 그래서 김천시 보건행정도 '진료중심'에서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개별사업 중심에서 통합·지속적 건강관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보건사업의 성과는 단순히 몇 명을 치료하고 몇 번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가에 있는 게 아니라, 시민의 생활습관이 얼마나 개선됐고 질병과 노쇠를 얼마나 예방했으며 건강하게 자립해서 살아가는 기간을 얼마나 늘렸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김천을 단순히 오래 사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건강하게 사는 도시'로 만드는 것. 김천시 보건행정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통합보건타운 체제가 출범하면서 시내 곳곳에 분산돼 있던 보건소 기능이 한 곳으로 통합됐다. 통합보건타운의 순기능은 무엇인가.
"통합보건타운의 가장 큰 의미는 공간의 통합을 넘어 서비스의 통합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보건기능이 한 공간에 모이면서 시민 입장에서는 이용 편의성이 높아졌고, 내부적으로는 부서와 사업 간 협업이 용이해졌다. 건강문제는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당뇨가 있는 어르신에게는 혈당 관리만 필요한 게 아니라 영양과 운동, 구강건강이 함께 중요할 수 있고, 신체기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방문 건강이나 재활서비스가 필요할 수 있다. 치매나 우울 위험이 발견되면 해당 전문서비스로 연결돼야 한다. 통합보건타운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검사~상담~교육~관리~추적관리'로 연결하는 체계로 만들 수 있다. 시민이 각각의 사업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보건소를 찾으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보건소가 찾아 연결해 주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보건소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보건소가 예방접종을 하거나 아플 때 진료받는 곳에 그치지 않고, 건강한 시민도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통합보건타운을 영유아부터 어르신까지 시민의 생애 전반을 관리하고, 보건·의료·복지를 연결하는 김천의 공공건강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원스톱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한 김천시보건소(통합보건타운) 전경. 연면적 1만2천396㎡의 건물엔 모든 세대의 건강 관리를 위한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다. 박광제 사진작가 제공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등으로 보건소 역할이 단순 진료·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 맞춤형 건강관리와 지역복지·의료 연계 거점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역밀착형 건강 파수꾼'으로서 김천시보건소의 역할은 무엇인가.
"초고령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질병을 하나씩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쇠와 질병 발생을 최대한 늦추고, 시민이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결국 건강수명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뿐 아니라 운동, 영양, 구강건강, 치매, 정신건강, 재활, 낙상예방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건강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고, 이후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살펴주는 것이 보건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천에 있는 14개 보건지소와 16개 보건진료소 등 지역 보건기관들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가 진료하는 '작은 진료소' 기능을 넘어 주민의 혈압·혈당과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건강위험군을 찾아내며, 방문건강과 건강증진사업을 연결하는 생활권 단위의 건강관리 거점으로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김천의 경우 혁신도시와 원도심, 농촌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같을 수는 없다. 지역별 인구구조와 건강 지표, 의료접근성을 바탕으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서비스를 더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맞춤형 보건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보건소는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곳'에서 '건강위험을 먼저 찾아가는 곳'으로 변화해야 한다. 보건소와 보건지소·진료소가 시민에게 가장 가까운 건강관리망이 되어 생활 권역별 건강격차를 줄이는 것, 그것이 지역 밀착형 건강 파수꾼의 역할일 것이다."
▶김천시보건소는 경북도 최초로 '웰다잉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사업의 의미와 향후 방향은 어떻게 설정됐는지.
"웰다잉이라면 흔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부터 떠올리지만, 조금 다르게 접근하면 웰다잉의 출발점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고 생각한다. 보건소는 임신과 출산에서부터 성인,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생애 전반을 지원한다. 그렇다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엄과 선택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역시 공공 보건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생애 말기의 의료와 돌봄은 누구에게나 현실적인 문제가 됐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끼리도 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쉽지 않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미리 생각하고 가족과 얘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강·복지정책이라고 본다. 김천시가 경북에서 처음 시범사업을 시작한 만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자연스럽게 삶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교육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필요하면 의료·복지서비스와도 연계해 나가고자 한다. 결국 웰다잉은 '잘 죽는 법'을 가르치는 사업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잘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사업이다.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과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시민 삶의 질이라는 하나의 정책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중보건의 등 보건소 의사 구인난이 심각하다. 김천시보건소의 상황과 개선방안은 무엇인지.
"공중보건의사 감소는 전국적으로 지역 공공보건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문제다. 특히 읍·면 지역이 넓은 우리 김천의 경우 공중보건의 감소가 농촌지역 의료접근성 문제로 직접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현실적인 고민이다. 현재도 제한된 공중보건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순환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공중보건의가 계속 감소한다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보건지소의 진료기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사가 부족하니 더 확보해야 한다'는 논의와 함께 '앞으로 보건지소가 무엇을 하는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별 인구와 실제 진료수요, 민간의료기관 접근성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꼭 필요한 지역에는 의료서비스를 유지하고, 한정된 의료인력은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동시에 보건지소의 기능을 진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만성질환 관리, 건강측정, 건강위험군 발굴, 방문건강, 예방과 건강 증진을 담당하는 지역 건강관리 거점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건강측정 장비와 디지털 헬스케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렇다고 기술로 의사를 대신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반드시 필요한 진료에만 집중하고, 간호·보건 전문인력과 기술을 활용해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더 촘촘하게 제공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공중보건의 감소는 분명 위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유지해 온 보건지소 운영방식을 미래에 맞게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의사가 있는 작은 진료소'에서 '주민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지역 건강관리센터'로의 전환, 그것이 장기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천시보건소 체력단련실에서 '신나는 웰빙체조'를 즐기며 오후 한때를 보내는 주민들. 박광제 사진작가 제공
▶보건행정가이면서 문화예술 연구와 정책 자문, 저술과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인 소개 좀 부탁한다.
"1995년 치과의사로 출발해 30년 넘게 의료인의 길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했고, 이후 종로구보건소에서 공공보건을 경험하면서 관심의 범위가 개인의 치료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으로 넓어졌다. 지금 김천시보건소장으로 일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의 경우 공공보건의로의 전환은 의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서 '한 도시의 건강을 설계하는 일'로 역할이 확장된 과정이다. 임상에서 눈앞의 환자 한 사람의 질병을 어떻게 치료할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시민이 질병에 걸리지 않게 무엇을 할 것인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를 고민한다. 문화예술 역시 오랫동안 내 삶의 중요한 축이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꾸준히 연구해 관련 저서 두 권을 출간했고, 귀국 후에는 서울문화재단 정책위원을 비롯해 문화정책 연구와 저술과 칼럼,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의료와 문화예술은 얼핏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결국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좋은 보건정책 역시 숫자와 제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김천시보건소장으로 일하는 동안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를 하나씩 만들어 갈 생각이다. 기존의 좋은 사업은 더 발전시키고, 필요한 새로운 사업은 과감하게 시도하며, 각각 흩어져 있던 서비스를 시민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김천시민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인이자 보건행정가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박현주
김천의 오늘과 김천 사람들 이야기를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