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가능한 사랑’이 일깨운 한국의 현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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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7 14:47  |  발행일 2026-09-18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상과 여우주연상 물망에도 오르는 상황이다. 유럽 매체들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리포터 같은 미국 매체에서도 '인간을 관찰하는 시선의 정점이다.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현실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이 빛난다' 등의 찬사가 이어진다. 출연한 전도연에 대해서도 '올해 최고의 연기 중 하나' 등의 평가가 나와 수상 기대가 커진다. 이 영화는 이러한 해외에서의 찬사와 수상 성과로 주목받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우리 제작업계의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가능한 사랑'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건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의 한 명인데 최근 8년간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의 평단이 그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이 감독의 존재 자체가 한국 소프트파워의 한 부분이고, 그의 신작이 나온다면 한국 문화의 위상을 더 올려줄 것이 확실시됐다. 그런 정도의 국제적 기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파가 일었다.


정부는 마중물을 지원한다. 제작비의 일부분을 지원해 민간 영역의 제작투자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가능한 사랑'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마중물 역할을 할 제작지원금 15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민간 영역의 호응이 없었다. 대기업조차도 투자를 기피하는 바람에 결국 제작이 불가해졌고 영진위 지원금은 반납됐다.


그때 미국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투자에 나서서 겨우 제작이 성사됐다. 이 감독의 신작이면 칸 영화제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한 것이 그 때문이다. 칸은 OTT 영화의 공식 출품을 제한한다.


한국을 대표하며 세계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거장의 신작마저 투자를 못 받았다는 점이 우리 제작업계가 현재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가능한 사랑'의 제작사 대표는 "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은 있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국 영화 투자 체력이 거의 바닥이어서 아주 상업적인 장르 영화조차도 투자를 못 받는 시장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기업 탓을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중예산급이라고 해도 일단 제작투자를 시작하면 최소 수십억 원에서 백억 원 이상의 지출까지 감수해야 한다. 수익 전망이 어둡다면 섣불리 투자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문제는 영상으로 수익을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한국영화 최대 기대작이었던 500억 제작비의 '호프'마저 여름 대목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놀라운 액션 연출로 오락성을 충분히 구현했음에도 관객의 눈높이는 매우 높았다. 이런 상황이면 기업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콘텐츠 투자에 나섰던 JTBC의 중앙미디어 그룹도 위기에 처했다. 다른 종편들이 중장년 시청자 위주의 저예산 콘텐츠들을 만들 때 JTBC는 '한국의 디즈니'를 목표로 지갑을 열었지만 돌아온 건 무모한 투자였다는 비판과 존망의 위기뿐이다. 이러니 우리 기업들은 더 위축되고 미국 OTT 자본만 큰손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 업계가 미국 OTT 자본에 종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 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놓여있다"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업계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한류 최전성기에 제작 현장에선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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