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심(1956년생·해녀 경력 50년). 섭지코지 납작녀 해변에서 3~4시간 동안 성게 물질을 마치고 육지로 올라오고 있다. 2024년 7월.
얼마나 오래 숨을 참았을까. 검은 잠수복을 입은 해녀가 물 위로 얼굴을 내민다. 깊은 바닷속에서 물질을 마치고 올라와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낸다.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다. 사진가 정혜원은 이 순간을 "저승에서 이승으로 넘어온 시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 바닷속에 머물다 다시 수면으로 돌아오는 시간. 한 번의 숨은 한 번의 노동이고, 무사히 바다에서 돌아왔다는 생존의 신호이기도 하다. 제주 해녀의 수많은 모습 가운데 어쩌면 그들의 삶을 가장 깊이 품고 있는 것은 이 한 번의 숨비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정혜원이 해녀를 본격적으로 사진에 담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두 달가량 제주살이를 하면서부터다. 그전에도 10여 년 동안 제주를 오갔지만 매일 해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70대, 80대의 고령에도 여전히 바다로 나가는 현역 삼춘들. 처음에는 그 강인함에 끌렸다. 제주 해녀는 이미 국내외 많은 사진가들이 카메라에 담아온 익숙한 대상이다. 검은 잠수복과 테왁, 주름 깊은 얼굴과 거친 바다만으로도 강렬한 이미지가 된다. 그렇다면 정혜원은 이 익숙한 대상에서 무엇을 더 찾고자 한 것일까.
노원자(1943년생·해녀 경력 66년)·김윤숙(1961년생·해녀 경력 42년). 물질이 없는 날 어촌계에 마련한 촬영 공간에서 함께 촬영한 해녀 인물사진. 2025년 5월.
대구에서 활동해 온 여성 사진가 정혜원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오래전부터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이어왔다. 여러 차례 마다가스카르를 찾아 처음에는 바오밥나무와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카메라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소박한 일상을 기록한 작업은 전시와 사진집으로 이어졌다. 그의 사진을 오랫동안 보아 오면서 느낀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낯선 곳의 풍경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마음이 머물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 그것은 정혜원이 오랫동안 사진을 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사진의 공간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제주 바다로 옮겨 왔지만, 사람을 향한 그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그 카메라는 섭지코지 고성·신양리 해녀 삼춘들의 삶 가까이에 머문다. 이곳에서 이어 온 작업은 2025년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열린 '섭지, 해녀우다!'를 통해 한자리에 선보였다.
정매옥(1946~2023·해녀 경력 63년). 뿔소라 물질을 마치고 자신의 망사리를 향해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2022년 11월.
해녀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정혜원은 잠수복을 입고 그들과 함께 바다로 들어갔다. 육지에서 바라보던 바다와 그 안에서 몸으로 만난 바다는 달랐다. 물속에서 해녀들의 움직임을 가까이 지켜보고, 수면으로 올라와 터뜨리는 숨비소리를 들었다. 오랜 물질이 남긴 잠수병과 난청, 약을 챙겨 먹으면서도 다시 바다로 향하는 현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해녀들은 바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평생을 물질해 온 이들에게 바다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면서도 자신의 몸으로 아직 물질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곳이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떠날 수 없고, 두려우면서도 가장 행복한 곳. 바다는 일터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곳이었다.
김춘화(1939년생·해녀 경력 71년). 섭지코지 고래죽은알 해변에서 물질로 채취한 뿔소라를 짊어지고 육지로 오르고 있다. 2022년 11월.
무거운 망사리를 등에 진 채 검은 현무암을 오르는 해녀의 사진을 본다. 얼굴 대신 굽어진 허리와 바위를 딛는 두 다리가 먼저 다가온다. '해녀'라는 이름에 앞서 평생 자신의 몸으로 일해 온 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몸에는 얼마나 많은 바다의 시간이 쌓여 있을까. 또 다른 사진에서는 두 해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다. 해녀들은 깊은 물속에서도 서로의 위치를 살피고 아직 올라오지 않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다. 자신의 숨만큼 곁에 있는 사람의 숨도 중요하다.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들이 오랜 세월 바다에서 살아온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사진가 역시 어느새 해녀들의 관계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찾아온 외지인이었지만, 이제 김옥자 해녀는 사람들에게 정혜원을 "내 셋째 딸"이라고 소개한다. 어렵게 물질해 얻은 해산물을 건네고, 미안해 받지 않으려 하면 "조금여, 받어"라고 한다. 몇 년의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렇게 쌓인 신뢰 속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삶을 여과 없이 카메라 앞에 내어주었다. 카메라 앞의 '해녀'가 아니라 함께 웃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 사진 속에 남는다. 해녀를 기록하는 일이 어느새 그들의 삶 가까이에 머무는 일이 된 것이다.
정매옥(1946~2023·해녀 경력 63년). 신양항 세기해변 앞바다에서 10m가 넘는 깊이까지 잠수해 뿔소라를 채취한 뒤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2022년 11월.
그렇게 가까워진 만큼 가슴 아픈 이별도 있었다. 2023년 12월, 처음부터 사진가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다른 해녀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왔던 정매옥 해녀가 물질을 마치고 나온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0m가 넘는 깊은 바다까지 들어가 물질하던 베테랑 해녀였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넘어온 시간."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수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숨비소리를 내며 돌아왔던 사람들. 정매옥의 죽음 앞에서 그 말은 더 이상 시적인 표현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해녀는 바다와 싸우기보다 바다의 시간을 기다린다.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 머물고,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 받아들인다. 정혜원 역시 해녀의 물질을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로만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자연의 시간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 온 사람들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가지는 데 익숙해진 우리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기다리는 것, 자연이 허락한 만큼 받아들이는 것. 오래된 해녀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김옥자(1940년생·해녀 경력 75년). 섭지코지 고른녀 앞바다에서 뿔소라 물질을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와 숨비소리를 내는 순간. 2022년 11월.
다시 사진 속 해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커다란 테왁 곁으로 얼굴 하나가 수면 위에 떠 있고, 그 뒤로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에 비하면 인간은 참 작다. 인간에게 허락된 숨의 길이 또한 짧다. 그 짧은 숨으로 평생 바다를 오가며 일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수면으로 돌아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쉰다. 숨비소리. 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리는 소리다. 정혜원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오래된 숨소리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은,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사진=정혜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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