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공인회계사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삶에서 겪으면 그 의미가 달라질 때가 있다. 건강이 소중하고, 신뢰가 관계를 지탱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건강을 잃고서야 건강할 때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의 가치를 깨닫고, 신뢰가 무너지고서야 그 무게를 알게 된다. 같은 사실이라도 왜 직접 겪고 나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아가멤논'에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라는 말이 나온다. 곧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일 수 있다. 경험은 그 앎에 무게를 더한다. 머리로 이해하던 것이 자신의 삶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절실해지기도 한다.
임상심리학자 존 로빈슨은 '남자답게 나이 드는 법'에서 상처와 눈에 관한 '무쇠 한스' 이야기를 소개한다. "네가 죽으면 마귀할멈을 만나는데, 그 마귀할멈은 너의 상처를 먹는다. 상처가 없으면 너의 눈알을 먹기 때문에 너는 다음 세상에서 장님이 된다." 상처가 있어야 다음 세상에서 장님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의 이야기다. 우리 삶에서도 종종 아픔을 겪고 나면 같은 세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실패를 겪고 나면 잘될 때 지나쳤던 위험이 눈에 들어오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다음에는 곁에 있는 것의 가치를 다르게 헤아리곤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쉽게 건네던 위로나 충고가 조심스러워지고, 타인의 아픔 앞에 머무는 법도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고통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고통은 그저 고통이다. 아프다고 누구나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사람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위대한 고통의 훈련'을 말한다. 그는 고통이 영혼에 긴장을 주고, 그것을 견디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이전보다 깊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같은 아픔도 누군가에게는 원망으로 남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되묻는 것도 바로 그때이다. 그 깨달음이 이후의 삶과 선택을 바꿀 수 있을 때, 고통의 경험은 비로소 지혜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도 좋은 시절에는 자신의 약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매출과 이익이 늘면 평소 안고 있던 위험도 당장은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위기를 겪고 나면 같은 숫자도 이전과 다르게 읽힌다. 성장을 뒷받침한다고 여겼던 차입도 규모가 적절한지 따져보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자금 여력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나아가 성장의 속도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까지 돌아보게 된다. 회계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기업에서 일어난 일을 숫자로 기록할 뿐이다. 사람에게 기억이 있다면 기업에는 기록이 있다. 경험은 지나가도 숫자는 남는다. 기록이 그 자체로 교훈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당시의 판단과 결과를 함께 되짚어보면 무엇을 놓쳤고 어떤 위험을 가볍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상처가 있어야 다음 세상에서 눈을 지킬 수 있다는 '무쇠 한스'의 역설을 다시 생각해본다. 어떤 것들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도 한다. 머리로 알고 있던 것도 삶을 통과하고 나면 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판단이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지면 선택도 달라진다. 이것이 오래전 '파테이 마토스'가 말한, 아픔을 통해 얻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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