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앤 카슨 ‘취침용 돌에 대한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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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11 18:07  |  발행일 2026-10-12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카미유 클로텔은 인생의 마지막 삼십 년을 정신병원에서, 의문에 사로잡힌 채, 입원 서류에 서명한 시인 남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 보냈다. 날 찾아와줘. 그녀는 말한다. 내가 이곳에서 미친 여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하루가 길다는 걸 기억해줘. 그녀는 담배를 피우거나 산책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각하길 거부했다. 그들이 취침용 돌 대리석과 화강암과 반암을 주긴 했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부숴버리고는 깨진 조각들을 모아 밤에 외벽 바깥에 파묻어버렸다. 밤이면 그녀의 두 손은 점점 크게 자라나서, 마침내 사진 속 두 손이 그녀 무릎 위에 놓인 다른 누군가의 신체 부위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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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속도, 자동화를 넘어 이제 '대리' 혹은 '대체' 지성으로 치닫고 있는 AI시대에 세계가 다시 시인을 호명하는 이유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한 번쯤 저 시가 말하고 있는 '고통' 가까이 다가가 그 실체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까미유 클로델이 자신의 재능이자 상처였던 돌을 부수는 일은 날로 부패되는 사랑의 장례식이자 끝나지 않는 슬픔의 추도식일 것이다. 우리는 저 지난한 작업이 가진 잔인한 고독과 처절한 분노가 그의 무릎 위에서 무엇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끝없는 다가감을 통해 그 색과 빛과 향기를 나눌 수는 있다. 무엇보다도 시는 고통을 체험으로 다룬다. 누군가의 '전언'(말)에 공감해서 우는 것은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체험'(삶)에 공감해서 우는 것은 서로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것이 연대이고 마침내 사랑이다. 시는 시 아닌 것에서 온다.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인간을 헤집는다. 시는 시 아닌 것으로 간다. 우리는 그것을 보기 위해 인간을 껴안는다. 이제 시는 무기가 되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그들 손에 들려 있는 것. 문명의 발달이 이기를 넘어 전능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재질을 대리하고 모든 재능을 대체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고통을 대리하거나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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