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접시에 담긴 문화

  •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 |
  • 입력 2026-10-18 16:58  |  발행일 2026-10-19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우리 집 식탁에는 작은 앞접시가 빠지지 않는다. 반찬이 몇 가지든 각자 먹을 만큼 덜어 먹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남기는 음식이 줄고, 서로의 숟가락이 한 접시에서 마주칠 일도 없어졌다.


내가 자라며 보아 온 밥상에서는 풍성함이 곧 정성이었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라는 말처럼 많이 차려야 제대로 대접하는 것이었고, 손님도 어느 정도 남겨야 예의라고 여기곤 했다. 한 접시에 숟가락을 함께 대는 일에도 식구끼리의 정이 담겨 있었다.


식탁이 달라진 데에는 캐나다 해밀턴에서의 홈스테이 경험이 한몫했다. 첫날 아침, 누군가 부르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기척이 없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주방에 있던 안주인이 "미스터 김!" 하고 불렀다. 식탁에는 식빵과 잼, 과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부인이 말했다.


"아침은 여기서 편하게 드세요. 점심도 필요한 만큼 챙겨 가시면 됩니다."


저녁에는 가족들이 빵과 닭 요리, 채소를 각자의 접시에 먹을 만큼 담았다. 음식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부인은 식빵 한 조각으로 접시에 남은 소스를 훔쳐 먹었고,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손님이 있는 식탁인데도 음식을 더 권하거나 접시를 채워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음식을 넉넉히 차려야 마음도 넉넉한 줄 알았던 내게, 빈 접시가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귀국 뒤 아내에게 각자 덜어 먹는 식사법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금세 받아들였지만, 아내는 한동안 공동 접시를 그대로 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내 자리 앞에 작은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내가 먼저 꺼내 둔 것이었다. 별말 없이 반찬을 덜어 먹는 아내를 보며 웃음이 났다.


명절과 가족 모임에도 앞접시를 내놓았다. 형제들은 앞접시 쓰기를 번거로워하며 한 접시에 함께 먹어야 정이 난다고 했다. 앞접시를 놓아주어도 숟가락은 여전히 공동 접시로 향했다. 그러나 몇 차례 식사를 함께하자 각자 덜어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상을 차릴 때 작은 접시도 나란히 놓는다. 아이들은 먹을 만큼 덜고, 모자라면 다시 가져간다. 음식이 남을까 걱정하며 권하던 손길도 어느새 달라져 있다.


한 접시에 숟가락을 함께 대던 정겨움은 줄었지만, 서로에게 먹을 것을 권하고 나누는 마음은 그대로다.


지금은 두 식구다. 저녁이면 아내가 찬장에서 접시 두 장을 꺼낸다. 하나는 내 앞에, 하나는 자기 앞에 놓는다. 접시가 식탁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저녁 식탁에 잔잔히 번진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