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길강묵 소장, 일터의 외국인에서 경주의 이웃으로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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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4 12:53  |  발행일 2026-10-24
경주 첫 국적증서 수여식…18명 새 출발
외국인 주민 2만명 시대, 사회통합 강조
“이민정책,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고민해야”
길강묵 울산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 장성재기자

길강묵 울산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 장성재기자

지난 20일 경주시청 알천홀.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국적증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무대 뒤편에는 '당신은 이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이날 7개국 출신 주민 18명이 가족과 관계자들의 축하 속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경주에서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관할 출입국기관이 아닌 국적 취득자들의 생활 터전에서 행사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행사를 마련한 길강묵 울산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59·행정학 박사)은 국적 취득의 의미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문제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적은 국가가 부여하지만, 국민의 삶은 지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일하고 이웃을 만나며 자녀를 키우는 경주에서 수여식을 연 것도 국적행정의 행정기관에서 국민의 삶이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옮겨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길 소장은 천년고도 경주라는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국민을 맞이하는 일이 과거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적 취득이 지역사회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맞물려야 한다고 봤다. 법적 지위를 얻는 것과 일상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국민이 된 사람들이 일터와 학교, 마을에서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갖추도록 지역사회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주는 이미 외국인 주민 2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경주시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0월 말 기준 외국국적동포와 고려인 등을 포함한 외국인 주민은 2만698명이다.


외국인 주민들의 삶은 경주의 산업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자동차부품업체가 밀집한 외동읍 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2024년 11월 기준 경주지역 취업 목적 체류 외국인 6천812명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3천798명으로 55.8%를 차지했다.


지역 제조업이 외국인 노동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들은 일터뿐 아니라 경주 곳곳에서 생활 기반을 마련하며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안정적인 정착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 장벽과 주거 문제, 의료서비스 이용, 자녀교육 등 일상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의료 사각지대도 그중 하나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치료비 부담으로 병원 방문을 미루는 외국인들이 있다. 경주시는 지난 9월부터 기존 의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입원·수술비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한 거주·소득 요건을 충족하면 미등록 외국인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길 소장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민정책도 외국인 인력 확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주민과 귀화자를 지역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인 동시에 지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민정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올 것인가'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는 외국인 한 사람이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일손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가정이 생기고 이웃 간 관계가 형성되면서 지역사회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경주시청 알천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국적 취득자와 관계자들이 국적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시 제공

지난 20일 경주시청 알천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국적 취득자와 관계자들이 국적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시 제공

이러한 생각은 이번 국적증서 수여식에도 담겼다.


이날 국적 취득자 18명은 모두 한복을 입고 국민선서에 참여했다. 길 소장은 한복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이를 한국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적응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한복이 오랜 역사와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동시에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국민들이 우리 전통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심'을 언급했다.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출생지나 혈통에만 한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권리와 책임을 나누는 일이 중요하며, 스스로 대한민국을 선택한 귀화자들의 결정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길 소장은 사회통합을 위해 이민자와 기존 주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한쪽에만 변화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심리학자 존 베리의 이론을 소개하며 이민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사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민자에게는 대한민국의 법과 공동체 규범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기존 주민에게는 출신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동등한 이웃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길 소장은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 공동의 가치를 세우는 것, 그것이 성숙한 이민사회의 토대이자 진정한 사회통합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 이민국가들의 경험에서도 우리 사회가 참고해야 할 점을 찾았다.


캐나다는 이민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해 왔지만 주택 공급과 공공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른 부담을 겪고 있다. 독일은 외국인 인력 유치와 더불어 언어교육, 노동시장 참여를 지원하는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길 소장은 이러한 사례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규모뿐 아니라 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민의 문은 국익에 맞게 열고, 질서는 원칙 있게 지키며, 정착의 길은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국적증서 수여식과 같은 행사 역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국가가 국적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지역에서는 일자리와 교육, 이웃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국민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강조하는 사회통합은 국적증서를 받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완성돼 가는 과정이다.


이날 국적증서를 받은 태국 출신 윧타숟티퐁 숟티락씨도 "삶의 터전인 경주에서 국적증서를 받아 큰 감동을 받았다"며 "대한민국 국민이자 경주시민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길 소장은 대한민국을 새로운 조국으로 선택한 18명에게도 환영과 격려의 뜻을 전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독립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로운 국민들도 이 역사를 이해하고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선택했듯, 대한민국도 여러분의 꿈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제 여러분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써 내려갈 주인공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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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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