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지역 펀드] 수도권에 몰리는 자금…TK 스타트업 성장궤도 오르면 상경

  • 이동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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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7 21:33  |  수정 2026-10-27 21:46  |  발행일 2026-10-27
지역 벤처펀드 47%·증권사 투자 70% 수도권 쏠림…대구경북 비중은 2.5%에 불과
스케일업 자금과 핵심 인재 찾아 수도권 떠나는 ‘자본 블랙홀’ 현상 고착화
“지방 권역별 투자공사 설립하고, 지역 발굴·수도권 연계하는 브릿지 전략 짜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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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산업의 경쟁력을 살리겠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이 조성한 '지역 벤처펀드'는 물론 모험자본 공급을 내세운 증권사의 '생산적 금융'도 수도권으로 쏠리고 있다. 비수도권 산업 현장에서는 벤처 자금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본 격차가 인프라와 우수 인재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비수도권의 투자 매력도를 낮추는 악순환이 굳어지고 있다.


◆ 지역펀드 수도권 역류, 증권사 투자금도 '수도권 行'


27일 국회 이광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정부 모태펀드 출자로 1조2천223억 원 규모의 '지역 벤처 모펀드'가 조성됐지만, 실제 집행된 투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7.7%(2천220억 원)가 수도권으로 역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지역 모펀드' 자금 운용사 절반 이상이 수도권 기반이다. 간판은 '지역 펀드'지만 실속은 수도권 기업이 챙기는 꼴이다.


증권사 투자금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활성화 기조 속에 증권사의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자금 공급이 늘고 있지만 수도권 쏠림은 여전하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증권사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공급한 자금은 1조9천272억 원이다. 이는 대출과 지분 투자를 합산한 수치로 부동산 관련 대출은 제외한 자금이다.


이 중 1조3천419억 원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기업에 집중됐다. 전체의 69.6% 비중이다. 서울 기업에 공급된 자금은 9천624억 원으로 전체의 49.9%를 차지했다. 반면 대구는 176억 원으로 0.9%, 경북도 302억 원으로 1.6%에 그쳤다. 두 지역을 합쳐도 2.5% 남짓한 초라한 성적표다. 그나마 대전이 지분 투자 기업 수 37개사로 비수도권에서 가장 많았고 670억 원을 공급받으며 3.5% 비중을 차지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등 기술기업에 자금이 집중된 결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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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면 떠난다"… 고질적 자본 격차에 멍드는 지역 생태계


지역 펀드와 민간 모험자본 모두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 유망 스타트업들은 성장 궤도에 오르면 어김없이 짐을 싸서 떠나는 이른바 '자본 블랙홀' 현상을 겪고 있다. 투자 회수와 사후 관리가 수월한 수도권 기업에 자금이 쏟아지는 구조 탓이다.


투자 조건으로 본사나 핵심 연구소의 수도권 이전을 노골적으로 종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벤처기업의 65.4%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첨단 산업 분야일수록 핵심 기술 인력을 지방에서 구하기 어려워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자연스럽게 연구소가 판교 등지로 향하는 현상도 겹친다. 자본 크기가 생태계 수준을 결정짓는 벤처시장에서 지역 스타트업은 출발선부터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는 형국이다.


물론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정대현 투자운용팀장은 "수도권 투자사들이 투자를 조건으로 이전을 요구한다기보다 기업 스스로 사업 확장을 위해 내린 전략적 선택인 경우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첨단 산업 분야일수록 핵심 기술 개발 인력을 지방에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지역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더라도 대부분 정주 여건이 우수한 수도권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자연스럽게 연구소가 서울이나 경기도 판교 등에 위치하게 되고 기업의 무게 중심 자체가 수도권으로 옮겨간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지역 지원 사업의 혜택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지역으로 내려오는 기업도 있다.


초기 단계를 넘어선 기업들의 후속 투자를 위한 네트워킹 역시 전략적 상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정 팀장은 "시리즈 A를 넘어 스케일업 단계로 진입하면 수십억 원 이상의 대규모 후속 투자가 이어져야 하는데 지역 내 소규모 투자사들끼리만 십시일반 자금을 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벤처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의 자금 조달은 필수적인데, 글로벌 시장 진출과 수백억 원대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수도권 대형 투자사들의 자본력과 그들이 보유한 촘촘한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벤처투자는 펀드 운용 시 특정 소수 투자사 독점을 막고 다양한 투자사에 기회를 주는데, 지역 투자사 수가 5~6개로 한정적이다 보니 나머지 물량을 수도권 투자사가 가져가는 구조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턱없이 높은 진입장벽… 실적 좇아 수도권 우대하는 출자자


동대구벤처밸리 전경. 수도권 투자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지역 펀드 자금이 오히려 수도권 기업으로 역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 DB

동대구벤처밸리 전경. 수도권 투자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지역 펀드 자금이 오히려 수도권 기업으로 역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 DB

지역 펀드 주도권을 수도권 대형 운용사에게 내주는 이면에는 지역 토종 벤처 투자업계의 구조적 약점과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계에 따르면 벤처 펀드를 성공적으로 결성하고 운용하려면 과거에 어떤 기업에 투자해 얼마의 수익을 냈는지를 증명하는 트랙레코드(운용 실적)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 기반을 둔 토종 벤처캐피탈이나 액셀러레이터들은 수도권 대형사에 비해 업력이 짧고 자본 규모가 영세해 누적 실적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출자 사업을 진행할 때 내거는 펀드 운용사 선정의 정량적 평가 기준을 충족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모태펀드 등 대규모 출자기관뿐 아니라 지역 벤처 생태계를 육성해야 할 일선 지자체도 펀드 안정성에 매몰되어 모순된 행보를 보인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펀드 손실을 방어하고 안정적 투자 실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펀드 운용사 선정 때 지역 신생 운용사에게 실적을 쌓을 기회를 주기보다 성공 경험이 화려한 수도권 대형 운용사를 우대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실력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지역 운용사들은 펀드 결성 시장에서 고배를 마시며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실적 부족이 펀드 결성 실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실적을 쌓을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 해법은 자생력…"수도권 연계 가장 현실적"


전문가들은 수도권 대형 운용사에 기대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벤처 생태계 자체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펀드의 지역 의무투자 비율을 손보고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에 돈을 내려보내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이 직접 투자를 결정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이광재 의원은 "지역별로 자본과 전문 인력 그리고 투자 결정권을 갖춘 지방 권역별 투자공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사 투자와 관련해 박홍배 의원 역시 "기업의 수도권 집중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생산적 금융의 성과가 지역에 고르게 돌아가기 어렵다"며 "정부가 비수도권 기업의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금융투자업계의 지역 투자 확대를 이끌 정책적 지원과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대현 팀장은 지역 벤처 생태계의 현실적인 성장 해법으로 '철저한 역할 분담과 수도권 자본과의 전략적 연계'를 제시했다. 그는 "초기 창업이나 프리 A(Pre-A) 단계까지는 지역 내 자본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50억~100억 원 단위 자금이 투입되는 다음 단계부터는 지역 자본만으로 후속 투자를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유망 기업에 지역 투자사만 계속 자금을 투입할 경우 향후 투자 회수(엑시트) 경로가 좁아지는 한계에 직면하는데, 기업이 생존하고 덩치를 키우려면 수도권 대형 투자사들을 유입시켜 공동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생태계가 갇혀 정체되지 않으려면 초기 유망 기업의 발굴과 육성은 지역 펀드와 운용사가 전담하되, 스케일업과 해외 판로 개척, 기술 협업 등은 수도권 투자사로 보내 연계하는 현장 밀착형 브릿지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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