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선 지방자치 역사가 30년(2025년)을 넘으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주민 목소리가 행정에 반영되고 복지정책도 확대됐지만, 정책 연속성 부족과 기초의회의 제한된 권한, 형식적 주민 참여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민선 자치의 운신 폭이 좁은 탓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비수도권 내에서도 특정 지역만 먼저 키우려는 잘못된 정책노선도 감지된다. TK패싱이 요즘 신조어로 등장할 정도다. 29일은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이지만 대구시민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대구에서 공직·의정·시민운동 현장을 지켜온 3인에게 지역의 민선 자치 실태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여기엔 대구가 민선자치의 모범적 모델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 녹아 있다.
대구가톨릭대 김부섭 특임교수 "단체장 바뀔 때마다 좋은 사업 중단…행정 연속성 지켜야"
대구가톨릭대 김부섭 특임교수(행정학과)는 민선자치 30여 년을 돌아보며 단체장 교체에 따른 정책 단절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고, 행정의 연속성과 공직자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강승규 기자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잘 추진되던 사업이 중단되고 새로운 사업이 등장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대구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대구가톨릭대 김부섭 특임교수(행정학과)는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을 앞두고 영남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30년간 지탱해 온 민선자치의 아쉬운 대목으로 '행정의 연속성' 부족을 지목했다. 주민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창구는 넓어졌지만, 단체장 성과를 앞세운 행정 관행은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공직사회가 달라진 결정적 계기로 지방의회 출범을 꼽았다. 과거엔 행정조직 내부의 판단과 효율성이 업무의 중심이었다면, 지방의회 구성 후에는 의회와의 협의와 주민 의견 수렴이 주요 절차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단체장에게 보고하면 됐지만 지방의회가 생긴 뒤에는 의회에도 정책을 설명하며 의견도 조율해야 했다"며 "업무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 일하는 방식 자체가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민선 지자체장의 공약과 실무자의 판단이 엇갈릴 때는 법적 타당성을 우선시했다는 말도 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단체장의 공약을 최대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한계를 명확히 보고하고, 필요하면 집행을 보류하거나 늦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단체장 교체에 따른 정책 단절을 크게 경계했다. 그는 "새 단체장들이 주민 호응이 크거나 기록에 남을 만한 신규 사업에 집중하다 보니 기존의 좋은 정책마저 중단되는 경우가 적잖았다"며 "좋은 사업은 누가 단체장이 되더라도 10년, 20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후배 공무원들에겐 인기보다 '원칙'과 '전문성'을 당부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은 정치인이 아니다. 시민 반응만 좇기보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자세가 시민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주한 전 대구 서구의원 "현안은 기초의회가 찾는데 해결 권한은 없다"
이주한 전 대구 서구의회 의원은 민선자치 30여 년의 한계로 기초의회의 권한 부족을 지적하며, 현장에서 발견한 주민 불편이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지도록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 제공
2018년 대구 기초의회에 입성한 이주한 전 서구의원은 제8·9대 의원으로 활동하며 제8대엔 후반기 부의장도 역임했다. 이 전 구의원은 지난 8년간 기초의회에서 체감한 지방분권의 가장 큰 한계로 '현장과 권한의 불일치'를 지적했다. 주민과 가장 가까운 기초의회가 문제를 먼저 발견하지만 교통·환경·복지 등 상당수 현안의 결정 권한은 대구시나 중앙정부에 있다는 것.
그는 "기초의회가 다룰 수 있는 자치사무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며 "'권한 밖'이라는 이유로 건의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의 목소리가 광역 행정이나 입법 단계까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반면 기초의회 권한 안에선 나름 집행부(구, 군청)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서류제출요구권과 행정사무감사권을 활용해 자료를 확보하고 현장과 대조하면 집행부의 잘못된 관행이나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어린이보호구역 비상벨 문제를 들었다. 경찰과 방범시설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확인한 뒤 현장을 살피고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이후 구정질문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비상벨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변화를 이끌었다.
그는 "문제는 광역이나 중앙 소관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라며 "기초의회가 발견한 현안을 광역의회와 국회가 공식적으로 이어받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제도적 연결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뒷받침할 '지방의회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국회에는 여러 지방의회법 제정안이 발의돼 있다. 정부도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역량 강화를 위해 연내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 구의원은 "지방분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지방의회에도 그에 걸맞은 권한과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며 "지방의회법이 제정돼 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가 실제 정책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 "주민 참여 늘었지만 정책 결정은 여전히 행정 중심"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주민의 실질적인 정책 참여 확대와 지역 맞춤형 복지 강화를 강조했다. 은 처장 제공.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년이 넘으면서 시민의 요구가 정책과 예산에 반영되는 성과가 일부 있었지만, 주민이 실질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데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지방자치 31년의 성과로 시민 참여 제도 도입과 복지정책 확대를 꼽았다. 하지만 주민의 목소리가 실제 집행부의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구시민의 줄기찬 요구가 실제 정책으로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로 무상급식 확대를 언급했다. 은 사무처장은 "대구는 무상급식 전면 도입도 전국에서 가장 늦었다"면서도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기에 늦게나마 관련 정책이 마련되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주민 참여 제도가 도입됐다는 사실만으로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고 했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아쉬움이 컸단다.
그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한다는 데 본래 취지가 있지만, 현재는 주민이 사업을 제안하고 그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주민참여예산제'라기보다 '주민제안제도'에 가깝다. 교육과 복지, 건강, 주거 등 예산 편성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자치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지역 특성에 맞는 복지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은 사무처장은 "과거에 복지는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지원'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무상급식과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로 영역이 확대됐다"며 "특히 고령화 탓에 돌봄 등 보건복지 분야의 일자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지자체가 복지정책과 예산, 일자리 창출을 유기적으로 연계한다면 지역에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방자치가 단순한 행정 권한 확대에 그치지 않고, 주민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 지역 내 안정적인 일자리와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
구경모(대구)
대구 서구와 북구를 맡고있습니다.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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