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 곁의 성, 우리가 몰랐던 달성과 팔거산성

  •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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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8 14:45  |  발행일 2026-10-29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지난달 3일 대구 중구에서 열린 '대구 달성과 주변 토성의 특성 비교'라는 학술세미나에선 이야기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달성(達城)'이라는 이름에 '크다'는 뜻과 통치자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달(達)'은 산이나 높은 성을 가리키며 '크다'는 뜻의 '대(大)'와 통한다고 한다. 경주 월성의 기와에 새겨진 '재성(在城)'과 '대궁(大宮)'이라는 명문을 함께 놓고 보면, 달성은 단순히 규모가 큰 성이 아니라 이 땅을 다스리는 이가 머물던 중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이름 속에 낯선 역사가 숨어 있던 셈이다.


'삼국사기'에는 261년 "달벌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달성이 그 성으로 추정된다. 최근 정밀발굴조사에서는 이 성이 순수한 흙벽이 아니라,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해 층층이 쌓아올린 정교한 토목 구조물이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다만 지금 확인된 성벽은 5세기 중엽 무렵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위에 서면 대구분지의 넓은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시야가 닿는 범위가 곧 다스림이 미치는 땅이었던 셈이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잠시 경상감영이 들어섰고,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세워졌다가, 오늘날에는 동물원과 산책로를 낀 시민 공원이 됐다. 도심 한복판에 있어 그 무게가 실감 나지 않았을 뿐, 달성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산성은 사정이 다르다. 대구 북구 함지산 정상의 팔거산성은 일부러 산을 오르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렵다. 신라 왕경의 서쪽 길목을 지키며 낙동강과 금호강 유역을 살피던 이 석축산성에서는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글자가 적힌 목간이 발견됐다. 종이 대신 나무에 먹으로 글을 남긴 이 작은 조각에는 벼와 보리 같은 곡식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산성이 군사적 요새인 동시에 물자와 사람을 관리하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산 아래 구암동 고분군을 남긴 지역 세력과 신라의 관계가 변화해 온 흔적도 이 목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땀 흘려 정상까지 오르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대구 사람들의 일상 속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도심 속 달성과 산 위의 팔거산성. 하나는 너무 가까워 무심히 지나치고, 다른 하나는 멀리 있어 좀처럼 찾아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성벽 위에서 주변을 내다보며 땅을 지켰다면, 오늘 우리는 그 이름과 흔적을 알아보며 대구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무심히 걷는 길과 숨차게 오르는 산등성이에는 저마다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큰 성'이라는 이름을 품고도 정작 그 뜻을 모른 채 지나쳐 온 것처럼, 이 도시는 아직 우리에게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대구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여러 겹의 시간 위에 자신의 하루를 포개어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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