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을 불행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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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9 10:36  |  발행일 2026-10-30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보훈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국가가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가유공자·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보훈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제 그 약속이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 대구달성토성에서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의 의병계열·계몽계열의 인사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1910년대의 대표적인 국내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총사령 박상진을 중심으로 지휘장 우재룡·권영만 등이 조직을 이끌었고, 전국에 지부를 두었으며 만주에도 거점을 마련해 독립군 양성과 무장투쟁의 기반을 닦았다. 대구의 상덕태상회는 중요한 연락·활동 거점이었다. 1918년 박상진 총사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가 체포되고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조직은 큰 타격을 입고 와해 지경에 이르렀다.


박상진은 허위 의병장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 양정의숙에서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받았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현실 앞에서 판사의 길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2년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세워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했고, 1915년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총사령을 맡았다. 대지주(칠천석)였던 그는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1918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다.


문제는 순국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상진 의사의 사후 가족의 재산은 대부분 사라졌고, 유족들은 일제의 감시와 냉대 속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증손자의 증언에 따르면 후손들은 생가 곁 낡은 서당에서 26년 동안 생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 독립운동가가 조국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친 뒤 가족에게 남겨진 것은 영광만이 아니라 가난과 고통, 시련의 날들이었다.


독립유공자 후손 가운데에는 여전히 생활·복지·의료 등에서 지원의 사각지대를 호소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취업과 교육 등의 기회 박탈에 따른 가난의 대물림이란 악순환 속에 세대가 내려갈수록 지원의 공백이 생기는 문제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선대가 국가를 위해 치른 희생 때문에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불이익까지 국가가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넘어 후손들의 실제 생활을 면밀히 조사하고 세대별 지원의 공백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손에게는 생활·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이어가는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사회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독립운동가의 희생이 가문의 불행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대한광복회 박상진 총사령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이름 없이 참여했던 수많은 동지들이 꿈꾼 나라는 독립된 조국만이 아니라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였을 것이다. 이제 그 후손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집안이어서 어려웠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국가가 해야 할 보답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역사 속 낡은 속담으로 사라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보훈은 선열의 희생에 걸맞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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