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대가면 도남리에 위치한 도남재,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배롱나무 두 그루 곁에 도남재(道南齋)가 자리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전통 재실과 다르지 않지만, 이곳에는 43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성주 의병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왜군에 성주성이 함락되자 관군의 방어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고향과 나라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무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다. 성주지역 의병들이다. 이들은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성주성 수복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그동안 세 차례로 알려졌던 성주 전투는 당시 기록인 『난중잡록』을 분석한 결과 18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홍과 김면을 비롯한 여러 의병 세력의 끈질긴 항전과 희생이 성주성 수복의 밑거름이 됐다.
이처럼 성주 의병의 역사를 간직한 도남재는 오늘날에도 지역의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68세 노구로 의병 일으킨 배덕문…도남리에 남은 충절의 역사
도남재는 단순한 문중 재실을 넘어 성주 의병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석현철 기자
도남재는 배상룡과 배상호 형제를 모시는 재실이다. 이들의 가문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에 참여한 서암 배덕문(1525~1602)의 후손으로, 도남리 일대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선조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68세였던 배덕문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 배설·배건·배즙 등도 항전에 참여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가문의 결단은 여러 세대로 이어졌다.
도남리 일대는 배덕문이 의병을 일으키고 훈련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는 성주지역의 의병 활동이 한 개인의 결단을 넘어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참여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성주 의병의 활동은 특정 가문에 국한되지 않았다. 정인홍과 김면 등 여러 의병 세력과 지역의 사족, 주민들이 항전에 참여하면서 성주성 수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았다.
도남재 앞에는 수령 약 300년으로 알려진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여름이면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며 재실과 함께 도남리의 역사적 풍경을 이루고 있다.
도남재는 단순한 문중 재실을 넘어 성주 의병의 역사를 기억하고 선조들의 충절을 되새기게 하는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으로 의미를 지닌다.
25일 성주역사테마공원에서 제6회 성주임진전쟁의병기림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성주군 제공
◆문중의 추모에서 군민의 역사문화제로
의병 관련 역사가 전해지고 있는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입구 전경. 석현철 기자
도남리에서 이어져 온 의병 선조들에 대한 추모는 오늘날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역사문화 행사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25일 성주역사테마공원에서 열린 '제6회 성주임진전쟁의병기림예술제'가 대표적이다. 성주임진의병정신문화연구회가 주최·주관하고 경북도와 성주군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38개 문중 후손과 유림,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해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성주 임진의병을 기리는 행사는 2021년 도남리에서 열린 의병축제의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경모제와 문화예술 공연, 역사체험 프로그램 등이 결합하면서 현재의 기림예술제로 발전했다.
특히 올해는 기존 대가면 도남리에서 성주읍 역사테마공원으로 행사 장소를 옮겼다. 의병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에서 시작된 추모행사를 군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역사문화 행사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행사 당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풍물패와 만장기 행렬을 시작으로 경모제가 봉행됐다. 이어 어린이 태권도 시범과 의병아리랑 공연이 펼쳐졌으며, 의병 활쏘기와 탈 만들기, 캘리그라피, 도자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특히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역사체험 프로그램은 의병들의 희생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교육의 장이 됐다.
지난해 37개 문중이 참여했던 행사에는 올해 38개 문중이 함께했다. 후손들이 선조들의 이름과 뜻을 기억하고 공동으로 추모한다는 점에서 기림예술제는 지역의 역사적 기억을 이어가는 의미 있는 문화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배재국 성주임진전쟁의병기림예술제 위원장은 "궂은 날씨에도 의병 선조들을 위한 행사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며 "쏟아진 빗줄기는 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희생을 더욱 깊이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역사적 기억을 미래세대의 문화유산으로
성주 의병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전쟁 기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의병 관련 역사가 전해지는 도남리 일대에서는 의병공원과 역사교육장, 체험관 등을 조성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의병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역사적 현장을 교육·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도남재와 같은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는 일은 과거의 영웅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 공동체가 보여준 희생과 연대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430여 년 전 성주성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의병들의 함성은 이제 도남재에 남은 역사적 기억과 후손들의 추모, 문화예술을 통해 오늘의 세대와 만나고 있다. 도남재가 성주 의병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라면 기림예술제는 그 정신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인 셈이다.
전화식 성주군수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여준 성주의 호국정신이 군민의 자긍심이자 미래 발전의 든든한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성주 의병 역사의 보존과 선양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석현철
지역의 변화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경오미자 하프마라톤대회]가을 문경 달린 3천여 명…오미자마라톤 첫 대회부터 ‘흥행’](https://www.yeongnam.com/mnt/webdata/content/202610/5_26.10_.15_오미자_하프마라톤_썸네일_출력본2_.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