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 팔려간 노숙인들의 엽기적 섬살이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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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1-09-08  |  발행일 2011-09-08 제면
"돈 벌게 해 주겠다" 꼬임에 당해
20110908

동대구역 대합실 등을 떠돌며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해온 A씨(34)에게 지난해 늦가을 한 중년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A씨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접근해왔다. 중년남자가 노린 것은 A씨뿐만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동대구역과 대구역의 노숙인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꼬였다.

대부분 지적장애가 있던 이 노숙인들은 중년남자가 시키는 대로 정체불명의 차에 탔다. 차를 타고 몇시간을 달린 후, 다시 1시간30분 동안 배를 타고 들어간 곳은 전라도의 한 섬. 섬에 있는 염전에 끌려간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을 하게 된다. 새벽부터 힘든 노동일을 했지만 수개월 동안 임금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염전업주가 제공한 것은 일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식사뿐이었다. 워낙 인적이 드문 섬이고, 휴대폰같은 연락도구도 없다보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몇달만에 도망나온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염전업주들은 노숙인들의 일년치 임금을 한꺼번에 계좌로 입금해줄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염전업주들은 염전일에 필요한 장화와 장갑까지 일꾼들의 임금에서 공제해 실제로 노숙인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A씨처럼 염전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노숙인들은 모두 11명이나 됐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7일 지적장애가 있는 노숙인들을 염전업주에게 넘기고, 소개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김모씨(44)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동대구역과 대구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11명을 전남 신안군 등의 염전에 일꾼으로 팔아넘기고 소개비로 모두 1천8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 돌아온 노숙인들은 대구와 경북의 임시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이 심한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먹을 것에 특히 집착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일부는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갔다. 동부경찰서 권광혁 강력8팀장은 “염전에서 노숙인들을 발견했을 때, 바짝 마르고 잘 씻지도 못한 모습이 사람의 행색이 아니었다”며 “이번에는 운이 좋아 빨리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전국 어딘가에서 이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해 노숙인 2명을 임시보호하고 있는 동대구노숙인쉼터 관계자는 “내년 6월부터 노숙인 복지법이 시행되면 노숙인을 보호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구지역에는 약 300여명의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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