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달성한 ‘김천의 아들’ 김재범의 유도 스토리

  •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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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2-08-02  |  발행일 2012-08-02 제면
“죽기살기가 아니라 죽기로 하니 이겼다”
고질적 부상 불구
강한 정신력으로
한국유도 신화 반열
20120802
김재범이 1일 새벽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81㎏급 결승, 독일 올레 비쇼프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불패(雖死不敗·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의 좌우명을 쉴 새 없이 되뇌이며 경기에 임했고,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4년전 베이징에서 은메달을 딸 때의 기분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1일 새벽 2012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81㎏급에서 올레 비쇼프(독일)를 유효승으로 누르고 한국 선수단에 세번째 금메달을 안긴 김재범은 김천 서부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처음 도복을 입었다. 또래 학생보다 왜소한 체격이었던 김재범은 중학교에 진학해 최경량급인 48㎏급에서부터 차근차근 기본기를 쌓았고, 이후 신체 성장속도에 맞춰 55㎏급~73㎏급의 순서로 체급을 올려가며 유도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대부분의 유도스타들이 중학시절부터 ‘전국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김재범은 묵묵히 훈련을 소화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부터 그의 숨겨진 ‘악바리 근성’과 경량급에서부터 축적된 ‘화려한 테크닉’이 빛을 발했다.

당시 김재범을 지도한 이무희 포항 동지고 유도부 감독은 “재범이는 예의가 바르고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훈련하는 선수였다”며 “3학년에 진학한 뒤에야 출전한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며 이름을 날렸고 유도명문 용인대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재범은 200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한달여 뒤에 열린 대통령배대회(73㎏급)에서는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현 용인대 교수)를 꺾으며 차세대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기술을 겸비해야 하는 남자 73㎏급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정글’과 다름없다. 이원희, 왕기춘(포항시청) 등 73㎏급의 강자들과 물고물리는 접전을 펼쳐야 했던 김재범은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선발전을 10개월 앞두고 81㎏급으로 체급을 올리는 도박을 감행했다. 경쟁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했지만, 김재범은 1년도 준비하지 못한 채 출전한 베이징대회에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하며 그간의 우려를 일축시켰다.

이후 김재범은 2009 아시아선수권대회·2010 아시안게임·2010~2011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1㎏급을 제패했으며,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김재범은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오늘도 긴장을 덜 하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또 졌을 것”이라며 “4년 동안 ‘지옥 훈련’을 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습관성 어깨탈골과 왼무릎 인대 부상 등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재범. “죽기 살기가 아니라 ‘죽기’로만 경기에 나섰다”는 그의 우승소감을 듣고 있으면 진한 땀냄새가 전해져 온다.

최지호기자 hoy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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