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구의 대중음악 현실을 말하다 ’ 평론가 권오성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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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9   |  발행일 2012-11-09 제37면   |  수정 2012-11-09
“가사에서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 김민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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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음악에서 나라와 지역, 심지어 한 개인의 현재·과거·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믿는 음악평론가 권오성씨가 유통사만 배불리는 현 음원시장의 문제를 질타하고 있다

평론이란?

남보다 ‘자기 객관화’가 승부처인 것 같다. 음악평론이라면 일단 자신이 음악 그 자체가 되어 본 뒤, 다른 사람이 하는 음악을 찾아 오랜 방황을 하고, 그 와중에 발견된 나와 남의 음악에서 추출한 공통분모를 갖고 세상사를 음악적으로 굴려가야 될 것이다. 뭘 주장하는 범주를 벗어나 본질과 비본질의 차이점을 지적하는 단계에 와야 되는데 쉽지 않은 길이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권오성(45). 한국대중가요사를 ‘권오성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탄탄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한국 최고 뮤지션을 찾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기도 한 그는 요즘 주말 오후 6시부터 2시간 대구MBC 표준FM(96·5㎒)에서 ‘권오성의 귀를 기울이면’을 진행한다. ‘문화독립군’ 같다. 이왕이면 음악이 사회 변화의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그걸 막는 세력과는 ‘전투’를 벌인다. 자기 색깔을 가진 지역 언더그라운드 후배한테 술도 잘 사준다. ‘독설가’다. 말을 돌리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무척 천박하게 여긴다.

그의 기획력과 비전이 대구가 공연 중심 도시로 진화하는데 일조할 것 같아서 만나봤다. 그의 말은 속사포 같았다. 어떤 대목에선 기자의 질문까지 질타했다. 음악사학적 배경이 풍부해서인지 아주 아카데미컬했다. 인터뷰는 대백프라자 근처 권오성의 뮤직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번안곡 위주 세시봉은 진정한 포크 아닌 듯…
85년 들국화 공연 충격, 세상에 이런 음악이…

대구에도 밴드 있지만 언론 무관심 아쉬워…
지역서 평론만 한다면 굶어죽을지도 몰라

음원시장 급성장 불구 유통사만 배부른 구조, 음악인은 다 죽어가…
한국 가요시상식은 권위도 도덕도 없다

LP애호 취향 존중하나 음악수준 잣대는 아니다
트로트와 다른 장르간 우열 논하는 것도 천박


◆ ZOOMIN 권오성

- 학창시절 밴드 베이스 주자였다고 하더라. 대충 군에 갔다 오면 철들지 않나.

“제대한 뒤 밴드에선 손을 떼고 컴퓨터음악에 몰두했다. 작곡하고 인문학 서적도 탐독했다. 대중음악을 학술적, 영역에서 고민하게 해 준 아도르노의 ‘음악사회학’, 리차드 미들턴의 ‘팝과 록, 그리고 해석’ 등에 감전됐다. 전형적인 룸펜시절이었다. 발표를 전제한 것도 아니고 소리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24세 때 재즈와 아트록 정보를 담은 복사기로 무가지를 만들어 음악다방 등에 뿌렸다. 돈이 될 리 있겠나. 3~4권 펴내고 없어졌다.”

- 긴머리는 언제 잘랐나.

“31세 때다. 이때 음악도 접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1년 정도 산격동에서 레코드숍을 운영했다. 방문학습지, 컴퓨터 강사 일을 하면서 PC통신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인터넷 사업에 눈을 떴지만 보기 좋게 망해버렸다. 한동안 친구가 운영하던 삼덕동 재즈클럽 ‘코너’에서 음악을 틀어주고 공연에 도움을 주면서 밥벌이를 했다. 2·28기념공원 근처에서 ‘폴’이란 재즈클럽도 운영했다. 코너에 매월 초청공연을 유치했다. 매달 공연은 당시 대구에선 뉴스였다. 버거웠지만 일종의 사명감으로 버텼다.”


◆ 김민기의 음악에 한표 던진다

-한국대중음악사에 한획을 그은 뮤지션을 열거하자면.

“김해송 - 이난영 - 현인 - 손석우 - 길옥윤 - 이봉조 - 박춘석 - 신중현 - 키보이스 - 히식스 - 한대수 - 김민기 - 이장희 - 조동진 - 산울림 - 송골매 - 조용필 - 들국화 - 김현식 - 정태춘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김광석 - 서태지 - SM 기획 등 거대기획사 - 인디음악이다.”

- 개인적으로 누굴 가장 좋아하나.

“김민기다. 1968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한대수가 공연하기 전 세시봉 뮤직은 번안곡이 대부분이라 진정한 의미의 포크라 보기 힘들다. 한국 모던 포크가 한대수에서 시작됐다면 한국적 정서가 담긴 포크의 시작은 김민기로 본다. 일단 음악이 뭔가를 아는 뮤지션 같다. 음악을 모르면 절대 그런 멜로디를 작곡할 수 없다. 또 포크송 반주 개념이 아니라 기타 연주 자체가 뛰어났다. 뭐니뭐니해도 가사에서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압권이다. 그런 음악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김민기표 음악이다.”

- 살아 오면서 음악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때는 언제인가.

“전인권·최성원·허성욱 트리오가 만든 들국화의 공연을 1985년 어름 대구시민회관에서 처음 본 일이다. 헤비메탈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들국화의 음악을 듣고 세상에 다른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한가지는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항상 꿈꾸던 음악과 도시의 모습이 실재하는 점에 놀랐다. 그렇게 많은 클럽, 거리와 공원의 버스킹 문화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요즘 밴드 붐이 새롭게 부는 것 같은데 대구에도 괜찮은 그룹이 보이던가.

“미8군 시대가 끝나고 많은 음악인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로 와서 밴드 활동을 했다. 대구에는 비교적 오래 밤무대 밴드가 존재했다. 대학의 스쿨밴드와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는 밴드도 많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일정 부분 영역이 있기도 했지만 상당수 비전을 찾지 못하고 서울 홍대 등지로 떠났다. 현재 ‘아프리카’는 물론 재결성해 최근 음반을 공개한 ‘라디오’ 같은 팀이 주목받았다. 실용음악과가 많이 생기면서 재학 또는 졸업을 한 사람들이 밴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론의 무관심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 음원공화국 시대에 일갈하다

- 현재 ‘음원공화국’이다. 밥 먹고 살 수 있는 전업가수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가수에 목을 매는 젊은이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심히 걱정이 된다.

“한 해 음원시장 규모가 6천500억원 정도로 급속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죽어간다. 지난 해 11월 세상을 떠난 인디음악인 ‘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말처럼 음악인은 죽어가고 유통사만 배불리는 꼴이 되고 있다.”

-유통사가 어느 정도 배를 불리는가.

“과거 한국음원제작자협회가 음원시장이 지금처럼 확대될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유통사에 지나치게 높은 요율을 줘버린 탓이다. 대체로 음원다운로드의 경우 유통사가 46%, 제작사가 40%, 실연권을 가진 가수가 5%, 저작권자인 작곡·작사가가 9%의 요율을 가진다. 미국 애플사가 운영하는 아이튠스의 경우 30%를 유통사, 나머지 70%를 음악생산자가 가진다. 대체로 전체의 30% 정도가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 디지털음원이 음악소비의 대세가 되었다면 이제 수익에 대한 정당한 배분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음악생산자는 돈이 되는 음악으로 몰릴 수 밖에 없고 다양성을 상실한 시장은 대중에게 외면받을 것이다.”

- MP3 세상 때문인지 각종 가수 가요제가 된서리를 맞은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1980년대까지 연말 가요 시상식은 한 해를 정리하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특히 MBC에서 방송되던 ‘10대 가수 가요제’는 최고의 권위였다. 10대 가수 가요제는 1966년 MBC가 개국 5주년을 맞아 기획한 축하공연이었다. 라디오 청취자 투표를 통해 10명의 인기가수를 선발하고, 공연장에서 방청객들을 대상으로 다시 투표를 해 가수왕을 선정했다. 텔레비전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일본 NHK의 홍백가합전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름도 ‘10대 가수 청백전’이었다. 1976년 다시 10대 가수 가요제로 명칭을 바꾸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누군가의 말처럼 상은 권위로부터, 권위는 도덕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의 가요시상식은 권위도 도덕도 없다. 하나마나한 시상식, 안하는 편이 나을텐데 꾸역꾸역 한다. 그냥 일본NHK처럼 연말쇼를 하나 만들면 되지 권위를 빙자한 시상쇼는 하지말자는 게 내 생각이다.”

-대구 LP문화의 현주소를 한번 진단해보면.

“LP는 소수 마니아에 의해 지속적으로 선택받고 있다. LP만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중고 레코드숍도 몇 군데 있고 LP를 트는 업소들도 간간이 있다. 마치 LP로 음악을 듣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비쳐지고 다른 미디어를 통해 음악을 듣거나 트는 행위를 폄훼하는 건 옳지않다. LP를 듣기 위해서는 돈이 제법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LP애호가들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이것으로 음악소비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에는 반대다.”


◆ 나가수 신드롬도 한물간 이야기

-개인적으로 나가수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가수 신드롬은 이제 한물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는 경쟁을 미끼로 내민 TV쇼의 한 현상이었지 음악이 주인이 된 건 아니었다고 본다. 시청자들도 경쟁이라는 코드에 집중했다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음악적인 요소에 감동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선 안되겠지만 아직 음악 장르간 우열경쟁심리가 음악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트로트를 폄훼하는 시선도 적잖은 것 같다.

“이런 질문 자체가 맘에 안든다. 트로트는 사실 남미 리듬이고 미국에서 폭스트로트가 생긴 후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이 명칭을 쓰는데 정확한 건 아니다. 일단 장르로 구분된 음악은 존재 목적이 다르다. 다른 장르를 두고 우열을 따지거나 수준 운운하는 것은 바퀴 달렸다는 이유로 포클레인과 승용차를 두고 어느 것이 좋은 차냐고 따지는 것과 다름없다. 이건 교육 탓이기도 하고 유신시절 대중음악을 탄압했던 시절의 잔재로, 대단히 천박하고 무지한 생각이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각각의 음악이 어떻게 발생되었고 풍미되었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게 옳다고 본다. 어떤 음악에 우열이 있고 없고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우열은 그 장르 내에서 가려져야지 다른 장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한 무대에 세우는 잡화점식 무대는 가소롭다.”

-대구에서 음악평론가로 밥 먹고 살기 참 어려울 것 같다.

“힘들다. 대구에서 평론만을 한다면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 음악평론문화가 자리잡기 힘든 곳이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안다. 평론할 만큼 대상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없으니 평론은 ‘완전부재’라 보면 된다. 일단 지역 언론에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면이 많아졌으면 하고, 음악전문기자도 생겼으면 좋겠다.”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권오성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스쿨밴드 베이스주자가 된다. 그러면서 대중음악사를 파고들어 고교시절부터 올챙이 음악평론가 활동을 시작한다. 지역 캠프헨리·워커 근처 록클럽과 재즈클럽 DJ로 돈벌이를 했다. 24세때 재즈와 아트록 관련 무가정보지를 A4용지에 복사해 음악다방 등에 배포했다. 31세 때 말총 같이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음악생활을 그만둔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레코드숍과 인터넷 통신사업 등을 전전하다가 재즈클럽 지킴이가 된다. 삼덕성당 뒤편 ‘코너’와 2·28기념공원 옆 ‘폴’을 꾸려가며 매달 초청공연을 유치한다. 다시 음악적 욕구가 충천해 달성공원 인근에 뮤직아트리에를 꾸미고 실용음악과 학생을 대상으로 컴퓨터음악 등을 가르친다. 대구MBC FM 등에 출연, 재즈와 월드뮤직을 소개하는 일을 시작으로 주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이 들어오게 되고 한국 대중음악의 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대중가요, 가는 길을 묻다(PD한영해)’제작에 참여한다. 음악글쓰기와 공연 및 문화예술행사 자문 등의 활동을 하던중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 된다. 현재 대구MBC라디오(FM 96.5㎒)에서 대중음악과 도시문화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 ‘권오성의 귀를 기울이면’을 진행하고 TV음악감독으로도 활동중이다. 대구국제재즈축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혀 새로운 도시음악축제 ‘헬로우 센추리 페스티벌’을 기획·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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