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빵꾸쟁이’ 류영택 작가 유고 수필집 발간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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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15   |  발행일 2013-08-15 제19면   |  수정 2013-08-15
빵꾸 때우며 울고 웃고 … 그의 삶 자체가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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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류영택의 생전 모습. <류영택유고수필집발간위원회 제공>

수필가 고(故) 류영택은 생전 ‘빵꾸쟁이’였다. 8t 트럭의 타이어를 때우는 일이 그의 주특기였다. 한번은 그가 수필 쓰는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호언장담했다. “글을 쓰기에 이만한 직업도 없어. 타이어 때우고 나서 글 쓰고, 때울 타이어 없으면 계속 수필 쓰면 되고. (허허허)”


컨테이너에서 자판 두드리며
형과의 인연 빗댄 냉면이야기 등
5년간 작품 200여편 쏟아내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
지인들이 수필집 펴내



정말, 류영택의 말은 맞았다. 1958년 고령에서 태어난 그는 2008년, 당시 51세의 나이로 뒤늦게 등단(수필세계)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5년 동안 무려 200편 넘는 수필을 썼다. 수필가들에 따르면 보통 이 기간에 50~100편을 써낸다. 갓 등단한 글쟁이가 이만한 작품을 써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대구 달서구 유천교 직전에 있는 ‘쌍마 타이어집’이란 팻말이 붙여진 컨테이너가 그의 유일한 작업실이었다.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손톱때가 빼곡한 손으로 연신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그의 생활은 어떤 여과장치도 없이 고스란히 수필이 됐다. 수필 ‘냉면’을 보면, 류영택이 냉면의 질긴 면발을 형과의 인연에 빚댄 대목이 나온다. 형은 제 앞가림은커녕 옆에서 의식주를 챙겨주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다.

그런 형도 동생이 정화조 차량 탱크 용접일을 할 땐 보조를 맞춰준다. 동생이 탱크 안에 들어가 용접을 하면 형이 탱크 밖에 서있다. 용접 때 나오는 가스에 동생이 질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형이 ‘별일 없냐’며 바깥에서 망치를 두드리면, 안에서 동생은 ‘괜찮다’며 벽을 쾅쾅 치면 되는 것이다. 류영택은 용접 일을 마치고 형과 질긴 냉면 면발을 씹어먹고 그 육수를 들이켜며 ‘울컥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벌컥 냉면 육수로 가라앉힌다’고 소회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지인들은 “그가 술에 취해 내놓는 이야기들은 전부 재밌다. 고향 얘기, 수필 얘기, 형 이야기…”라며 “한번은 한밤중 길바닥에서 그의 얘길 듣다 1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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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택 유고 수필집 ‘냉면’과 ‘징검다리’.

류영택 유고 수필집(수필세계사)이 최근 나왔다. ‘냉면’과 ‘징검다리’가 그것이다. 그를 좋아했고 그의 수필을 사랑했던 지역의 수필가와 그의 초·중학교 동창이 힘과 마음을 모아 꾸린 책이다.

류영택유고수필집발간위원회 홍억선 회장은 “류영택은 화산처럼 터져나오는 글재주가 있었던 글쟁이였다. 그의 이빨 사이로 술술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웠던 때를 추억하며 이번 유고집을 세상에 낸다”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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