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줍는 여인 뒤 … 말을 탄 사람이 보이시나요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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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21  |  수정 2014-06-21  |  발행일 2014-06-21 제면
그림 속 경제학
20140621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 농촌의 한가로움만 보이는 독자는 먼 곳을 한번 보라. 그곳엔 곡식 더미를 분주히 나르고 있는 일꾼들은 물론, 그들을 감독하는 지주 대리인이 말을 타고 있다. <이다미디어 제공>
20140621
문소영 지음/ 이다미디어/376쪽/ 1만6천500원

장 프랑수아 밀레(1814~75)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우리에게 농촌생활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명화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농촌 그림의 대명사’로 각인돼 때로 따분함마저 느낀다. 하지만 당시 보수적 부르주아 평론가들은 이 ‘이삭 줍는’ 그림을 불온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왜 그랬을까. 답을 알고 싶다면, 시선을 그림 중앙에서 뒤편으로 이동시켜보라. 뭐가 보이는가. 곡식을 분주히 나르는 일꾼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말을 탄 감독관(지주 대리인)이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추수 후 바닥에 떨어진 자잘한 이삭을 찾고 있는 세 명의 여인들과 뒤쪽 무리의 드라마틱한 대조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현재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활동중인 문소영은 “이 조용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대조야말로 당시 빈부 격차를 고발하고 농민과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선동하는 것이라고 당시 비평가들은 생각했다”고 적었다.


노동자 현실 담은 밀레의 그림
담합 고발하는 예배당 벽화
17세기 튤립투기 풍자화 등
명화 속 경제학 재밌게 설명


책 ‘그림 속 경제학’은 이처럼 미술과 경제학의 만남을 다뤘다. 저자는 경제와는 거리가 먼 미술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트랙을 구사한다. 즉 미술사와 경제사를 시대 순으로 나란히 병렬배치하면서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미술작품을 해설하는 방식이다.

지오토의 그림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엔 당시 사회의 ‘독점’과 ‘담합’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엔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두 남자를 때리려 하고 있다. 한 남자는 겁에 질려 두 손을 들어 올렸고, 나머지 남자는 한 손만 들고 있다. 남은 손엔 빈 새장이 쥐어져 있고, 그의 발밑 우리에서는 놀란 양 한 마리가 뛰쳐나가고 있다. 이 남자들은 누굴까. 왜 예수에게 혼이 나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들은 성전 앞에서 돈을 버는 동물 장사꾼과 환전상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소와 양 등을 제물로 바쳐야 했고, 성인 남자는 성전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특정 통화로 환전해 세금으로 내야 했다. 이에 동물 장사꾼은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톡톡히 씌워 동물을 팔아 넘겼고, 환전상은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세금으로 낼 은화를 내줬다.

저자는 그림 속 상황을 이렇게 분석한다. “장사꾼과 환전상이 자기들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성전 밖에 자신들의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동시에 자기들끼리는 가격담합을 해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밖에 책에서는 튤립 투기를 하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패닉에 빠진 원숭이를 묘사한 ‘튤립 광풍 풍자화’를 보여주면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튤립투기의 전개과정을 설명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돌 깨는 사람들’에선 채석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묘사하며 이 그림이 초기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있다고도 언급한다.

글은 핵심을 짚는 간결한 문장으로 돼 있다. 독자들은 경제학적 기본 개념을 쉽고 재밌게 익힐 수 있으며, 그림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림의 이면을 한 가지 더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저자는 “미술과 정치경제적 변동, 그 저변에 깔린 경제학과 철학의 흐름은 몇 겹의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 책은 그 고리를 찾아나가는 통섭의 여정”이라며 “예술의 꽃인 명화 속에서 경제학 코드를 찾아 경제, 정치, 사회적 변화의 역사를 좀 더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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