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 4부자…장남 고시·차남 금융·삼남 디자인 공부하다 호출 ‘찐빵의 길’

  • 이춘호
  • |
  • 입력   |  수정 2014-12-12  |  발행일 2014-12-12 제면
■ 대구 가창 ‘호찐빵만두나라’
20141212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찐빵거리를 종회무진 누비는 찐빵 4부자. 이들의 힘찬 주먹으로 만든 찐빵은 팍팍한 일상을 견뎌내는 서민에겐 더없이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20141212

찐빵이 그리운 요즘이다. 1971년 삼립식품에서 출시한 호빵은 왠지 식감이 덜할 것 같다. 역시 찐빵이다.

2000년부터 불기 시작한 ‘팔도 찐빵 삼국지’.

전국에서 가장 거세게 찐빵 붐을 동시에 불러 일으킨 곳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면사무소 앞에 형성된 찐빵거리.

대구 수성구 파동에서 청도 방면으로 가는 길목의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찐빵거리. 보이는 집마다 찐빵집이다. 가창면사무소 주변에 집중돼 있다. 원조 가창 옛날 찐빵 손만두, 호찐빵 만두나라, 가창찐빵 손만두, 가창 나드리 찐빵 만두, 가창 할배 만두찐빵, 고슴도치분식, 가창 안흥찐빵, 원조 고향 옛날 찐빵 만두, 추가네 옛날 손찐빵 만두(053-768-7572) 등 10여 곳이 영업 중이다.


30여년 제과제빵 아버지 서노영 대표
10여년 전부터 찐빵 하나에 매달려

자신만의 팥소·피 개발 남다른 식감
고구마·쑥·호박 등 힐링제품 판매
당뇨 환자 위한 찐빵·만두도 개발중

기계부 두고 조건맞는 장비 직접 제작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획득
위생에 만전 기해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 손 가는 작업
주말에 영화 한편 보러갈 시간 없어


◆ 찐빵 4부자 파이팅~

서노영(58)·호준(31)·성우(29)·진혁(25). 가창찐빵거리에서 알아주는 찐빵으로 똘똘 뭉친 네 부자. 호찐빵 만두나라 서노영 대표는 제과제빵으로 잔뼈가 굵은 몸이다. 30여년 제과점을 운영하다가 2001년 찐빵 하나에만 매달렸다. 현재는 세 아들을 축으로 전문기술자와 판매원 등 25명이 ‘찐빵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창면사무소 바로 옆에는 본점이 있고 건너편에 2호점이 있다.

서 대표의 첫인상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그래도 자주 웃는다. 한눈에도 ‘찐빵 만드는 게 천직인 사람’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장터에서 물건을 팔았다. 서문시장에서 원단, 가방 등을 취급하다가 상경해선 남·동대문으로 가서 잡화류를 만졌다. 다시 경기도 시흥에서 잠시 공장 하다가 부도를 맞는다. 83년 즈음이었다.

현재 본점 자리에서 양곡점을 운영한다. 몇 년 있다가 그 자리에서 첫째·둘째 아들 이름 중간자를 따서 ‘호성제과’를 오픈한다. 변두리에서는 그런대로 알아주는 빵집이었다.

서 대표는 맛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다른 집과 달리 재고판매를 하지 않아 항상 신선한 빵을 팔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든 빵은 하루 지나면 푸석해져요. 재료만 제대로 된 걸 사용하면 하루 지나도 어느 정도 굳지 않습니다.”

버터, 우유, 계란 등을 어떤 비율로 결합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배합비율이 맞지 않으면 푸석해지거나 식감이 떨어진다. 단맛이 너무 진하면 맛을 떨어트리게 된다.

◆ 2000년 시작된 호찐빵의 역사

새천년이 시작됐다. 찐빵 돌풍이 일어난다. 동물적 감각이 발동됐다. 이 거리가 곧 찐빵거리로 변할 거란 예감이다. 서 대표가 호찐빵을 오픈하면서 비로소 찐빵거리의 기틀이 잡힌다.

앞서 제과점을 할 때 찐빵과 만두를 팔았다. 반응도 좋았는데 사실 그의 입에는 별로였다. 판매 중단이었다. 그는 자기 입에 맛지 않으면 절대 팔지 않는다.

제대로 된 찐빵만들기는 시행착오의 연속. 처음에 찐빵 시제품을 시식해보니 그건 ‘호빵 스타일’이었다. 크기와 팥소의 맛은 시중의 것과 비슷했지만 식감이 푸석해서 실패였다. 새로 개발에 들어간다. 일주일 만에 개발한 게 지금보다 식감은 떨어지고 그런데로 괜찮은 모델이었다. 다시 판매를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시내 앙금 전문 업체로부터 앙금을 받아 사용했다. 단팥소가 너무 달았다. 그래서 당도를 낮출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손수 앙금 개발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의 단맛으로 가야 하지? 그게 화두였다. 일단 서 대표의 입에 맞지 않으면 출하를 하지 않는다. 너무 단 팥소는 먹고나면 금세 혀끝에 단맛이 남아 아리게 된다. 한 개 먹고나면 더 먹기 싫어진다. 달아도 최소 5개 정도는 먹도록 해줘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선 가장 자연스러운 단맛의 포인트를 잡는 게 승부처다. 그러면서도 팥 본래의 식감도 살려야 한다. 초창기는 통팥의 비율을 20~30%로 설정해 씹히는 식감을 살렸다. 하지만 통팥 자체를 싫어하는 이도 있고 원가 부담도 되고 해서 비율을 10~15%로 낮추었다. 통팥이 너무 많으면 송편 같고, 너무 적으면 찐빵 느낌이 사라진다. 찐빵 만들기, 참 어렵다, 어려워.

◆ 피나는 저온숙성술 익히기

팥소에 이어 찐빵 피 만들기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집은 드물게 무려 48시간 저온숙성을 통해 피를 만든다. 그래서 폭신한 식감이 남다르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 때 일반 제과점용 반죽기를 개조해서 사용한다. 밀가루 성분표를 보고 투입해야 될 물의 양을 정한다. 빵의 기본은 이스트, 밀가루, 물, 그리고 설탕, 버터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좋은 피는 그 배합비율과 숙성 시간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초창기에는 막걸리를 활용해보려 했다. 1차 숙성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패했다. 막걸리는 소량 생산의 경우는 가능하지만 대량생산시스템에서는 곤란하다는 걸 알았다.

3년 만에 만족할만한 찐빵이 탄생한다.

만두도 개발했다. 화학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채소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왕만두, 김치만두, 찐만두, 고기만두 등 네 가지를 만든다. 김치만두의 경우 직접 담근 김치를 사용한다, 보통 숙성시간은 보름에서 한 달 정도. 묵은지를 사용하면 식감이 떨어진다. 김치, 양배추, 호박, 돼지고기, 땅콩가루 정도만 넣는다.

채소의 맛을 잡는 게 아주 힘들다. 양배추의 경우 6개월 저장고에 보관한다. 배추의 경우 3개월 저장고에 넣는다. 처음에는 젓갈을 잘못 선택해서 버린 김치도 많다. 지금은 최고급 새우젓만 사용한다. 멸치젓갈을 사용하면 멸치 비린네가 만두에 스며들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단다.

그는 힐링찐빵에도 관심이 높다. 현재 옥수수빵, 고구마찐빵, 쑥찐방, 호박찐빵 등을 동시에 개발했다. 요즘 먹어도 당수치가 급증하지 않는 당뇨환자를 위한 찐빵과 만두를 개발중이다.

판매대에서 차가워져 있는 찐빵을 금방 뜨겁게 쪄내는 것도 고난도의 기술.

특히 찐빵은 식으면 맛이 없다. 그래서 단시간에 최적으로 쪄내야 한다. 보통 여름은 3분, 겨울은 8분 만에 끝내야 한다. 찐빵을 채반에 오래 방치하면 밀가루가 녹아 못먹게 된다. 덜 찌면 속이 차가워 식감을 버린다. 찜통 구멍은 모두 13개가 있다. 구멍마다 고압 스팀발생기가 설치돼 있다. 김 온도는 평균 150℃. 구멍 한 개당 10~20개의 채반을 쌓을 수 있다. 주문받고, 시간 맞춰 쪄내고, 도시락에 담아낸다. 이게 손발이 안 맞으면 문 닫아야 한다. 본점은 오전 6시4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풀가동.

특이하게 기계부가 따로 있다. 조건에 맞는 장비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서다. 위생에 목숨에 걸었다. 그래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까지 획득했다. 저장·생산·판매·회계·기계 파트가 시스템적으로 돌아간다. 소규모 찐빵집에서 이렇게 복잡한 생산유통시스템을 갖춘 건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요즘 찐빵과 만두 과정을 개설해 전문가도 양성한다. 이러다가 ‘찐빵만두대학’까지 생길지 모르겠다.

◆ 세 아들을 불러들였다

서 대표의 꿈이 클수록 일이 몸에 버거웠다.

그런데 세 아들은 가업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듯했다. 작정했다. ‘이대로 두다간 호찐빵의 기술이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다. 하나씩 불려들였다.

원래 장남은 고시에 매달려 있었다. 차남은 금융계통 공부를 하다가 끌려왔다. 막내는 디자인 공부를 하던 중에 부름을 받았다. 장남과 막내는 독신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세 아들 모두 한 쪽 발만 가게에 넣고 있었다. 여차 하면 도망갈 기세였다. 하지만 아버지 덕에 이렇게 장성했다는 생각에 점차 찐빵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생산 파트는 첫째, 판매와 위생관리는 둘째, 셋째는 아직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상당히 자동화시켰다지만 아직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가야 된다.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 솔직히 주말에 영화 한 편 보러나갈 겨를이 없다. 24시간 찐빵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취재를 간 날도 세 아들 모두 말이 없었다. 일에 지쳐 극도로 신경이 민감해 진 상태였다. 아버지도 눈치를 채고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
국가보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