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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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7  |  수정 2015-05-07 07:55  |  발행일 2015-05-07 제21면
[문화산책] 파라다이스

“손노리가 본명이에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어지는 대화가 재미있다. “놀이할 때 그 놀이예요? 손으로 작업한다고 손놀이, 손노리인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장황한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잘 노는 건 정말 중요하니까요. 어린 시절 놀 때를 떠올려보세요. 놀 때는 주변에 있는 아이들과 누구나 쉽게 놀이친구가 되고, 공기놀이도 소꿉놀이도 푹 빠져서 놀고, 집에 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잖아요. 그러곤 다음날도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방을 내팽개치고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언제 놀았냐는 듯이 쏜살같이 뛰어 돌아가고. 그렇게 앞뒤 없이 잘 놀려고 손노리입니다.”

인간은 지상낙원을 꿈꾸어왔고 여전히 그것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온 이후로 인간의 모든 행적은 분별없이 노닐던 그 낙원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낙원 자체이기를 바란다. 파라다이스(paradise)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무엇일까? 파라다이스의 사전적 의미는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얼마 전에 참여한 ‘아트 프로젝트 울산 2015’에서 만난 한 작가(번역가)는 파라다이스의 어원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곳’이라는 의미라고, 내가 온전히 포함되어 있는, 내 인식이 있는 곳을 말한다고. 마음 깊이 공감했다.

파라다이스는 이상적 무엇이 아니라 내가 있는,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의 현재를 부족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미래는 꿈꾸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그것을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한답시고 현재 나를 부족하게 여기도록 강요하거나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들추는 이가 있다면 멀리하고 싶다. 어차피 그이가 나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나의 절실한 자각이 아니라면 오늘의 게으름을 반성하거나 지금의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파라다이스는 지금 여기, 이대로의 나일 수 있도록. 손노리 <시각소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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