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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
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노동의 가격만이 유일 관심사이자 숭상하는 가치다. 그래서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일수록 좋은 직업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는 모든 가치의 중심을 돈으로 환원시켰고,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19세기 화가들은 변화된 사회에 적응해야만 했다. 경제적 기반이었던 왕족과 귀족 등 파트롱을 잃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화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과연 누가 그림을 사줄 것인가 하는 결정적인 문제가 남았다.
화가는 창작과 판매라는 까다로운 질문을 모두 풀어야만 했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시장에서 팔리기를 기대하거나, 돈 많은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그림을 주문 받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잘 팔리면 가장 좋겠으나, 대부분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돈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림이 다시 돈으로 돌아와야만 먹고 살 수 있었다. 개성을 중시한 빈센트 반 고흐는 전자를 선택했고, 가난을 감당해야만 했다.
바로 이 부분이 지금의 우리 처지와 조우한다. 초기 자본주의보다 더욱 냉정한 신 자유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들을 백만 가지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고 싶었던 일은 어젯밤 꿈처럼 멀어지고 흐릿해진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 없이 원하는 삶을 살기 힘들다. 돈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 그것이 지금 청춘들이 원하는 삶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하다.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드물다. 빈센트는 잘 팔리는 그림을 그려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그림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했기에 가난을 감당해낼 수 있었다.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 얻기 힘들다고 설파한 철학가 스피노자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살아서는 무명의 비인기 화가였던 빈센트가 내게는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잘 알고 그에 헌신했던 고귀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나 생계의 두려움으로 주저하는 21세기의 모든 청춘들에게 빈센트의 삶은, 그래서 한번쯤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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