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미숙’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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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1  |  수정 2015-06-11 07:58  |  발행일 2015-06-11 제23면
[문화산책] ‘미숙’ 사랑

나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잘 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제법 탔다. 잡지에 내가 쓴 동시가 실린 적도 있었다. 내가 노트에 쓴 소설을 학교 친구들이 돌려가며 보기도 했다.

한번은 학교 대표로 글짓기 대회에 나갔다. 낯선 교실에 낯선 이들과 앉아 원고지를 받아들고, 칠판에 감독 선생님이 흰 분필로 제목을 쓰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그 대회에서 어떤 상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또렷하게 남아있는 느낌이 있다. ‘설레는 자유’ 그것이다. 내가 쓴 글을 아무런 ‘검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제출하는 기분은 지금도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에는 통과해야 하는 문이 많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때가 가장 좋을 때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며 뭐든 맘껏 해 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오히려 그 시절엔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무엇이든 다 ‘검사’ 받아야 한다.

나는 어릴 때 “네 생각을 말해봐”라는 질문이 무서웠다. 왜냐하면 어차피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혼이 날 거니까. 눈치가 없고 고집이 셌던 나는 어른들이 묻는 것에 대해 정답을 잘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툭하면 울었다. 가슴속에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다. 말할 게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면 어차피 혼이 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유일하게 달래주던 것은 글쓰기였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글을 잘 쓰나 보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책보다는 내 생각을 매 순간 읽어왔을 뿐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혼자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 외에는 다 ‘미숙’하다. 내 생각을 펼치는 것 자체에 매우 집중하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여기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의 미숙함으로 삶이 외롭고 두려운 순간이 많으며, 친구도 별로 없는 데다가 사회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미숙함을 사랑할 것이다.

손노리 <시각소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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