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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은 무사할까? 비를 기다리다 비에게 묻고 싶었다. ‘기다릴 때 와 주지, 하늘 길 막혀 못 왔니?’ 쩍쩍 갈라진 저수지 바닥과 싹이 나오다 말라버린 열무·배추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응답하듯 단비가 내렸다.
해갈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남쪽에서부터 서서히, 종당엔 장마라는 짐승을 몰고 오기도 하겠지만, 사람의 힘으론 안되는 게 하늘의 이치 아니던가. 예부터 가뭄에 오는 비를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감천(感天)한 것으로 비유한다는 풍습이 있다. 음력 5월10일 전후에 내린 비를 태종우라 불렀다. 혹심한 가뭄 속에 임종한 태종이 ‘나 죽는 날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할 것이오. 비에 맺힌 나의 한에 겨운 눈물이니’라고 말 한 데서 비롯되었다.
제주도에선 7월 초하루에 내리는 비를 이 곳에 유배되어 가시울타리 속에서 죽은 광해군의 한이 맺힌 것이라 하여 광해우(光海雨)라고 했다.
예전에 그 집안의 물 갈무리를 며느리에게 담당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물 갈무리란 바로 물을 얼마나 알뜰하게 아껴 쓰느냐의 절수 가풍인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이건 땅에서 솟은 물이건 일단 그 집안에 든 물은 헛되이 밖으로 흘러 내보내지 않는 것이 집안을 융성시키는 부인의 조건으로 돼 있었다. 물을 헤피 쓰는 버릇은 재물이 새 나갈 염려가 되므로 내탐시키는 일이다. 산간 지방에서는 두레박으로 샘물을 길어 쓸 때 세 두레박째의 샘물마다 두레박을 기울여 한 질금 샘 속으로 물을 쏟아 붓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질금질이라 했다.
그 당시부터 그만큼 물을 아낀다는 것은 미래를 향해 정신적·물질적으로 크나큰 자원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동네 우물터에서 물동이에 물을 퍼담을 때도 마지막 바가지 물은 꼭 질금질을 했다고 한다. 포도나무 물관의 힘으로 열매가 익어가듯.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나 눈은 땅에 묻어둔 물독에 받아 두었다가 볍씨 발아시킬 때 유용하게 썼다. 전국이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지금, 수세식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요란스럽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전통 물 갈무리가 새삼스럽게 가슴 깊이 다가온다.
이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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