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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엽 <대구공업대 교수·도예가> |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일부 매스컴에서는 120세 시대가 왔으니 거기에 맞는 인생을 대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체에 고장난 대부분의 장기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살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멋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세상에서 갑자기 정년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 수명의 연장과 직장의 정년이 묘한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얼마 전 모 단체에서 주관한 특강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그날 연사는 대구의 한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교수였는데 특강의 주제는 “과학자가 유학(유교)을 왜 사랑하였을까”였다. 특강 내내 학문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운 과학과 유학을 묘하게 접목해 풀어내는 명강의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 분은 특강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아직 젊고 열정이 있어 학문을 계속하고 싶은데 65세 정년이라는 사회적 약속 때문에 자리를 떠나 나왔지만 못다 한 학문적 탐구를 계속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나는 이런 훌륭한 분에게는 정년과 상관없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연구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인재를 키워내는 데는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렵게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키워져도 정년이라는 틀어 가둬 사장시킨다면 이는 국가적인 낭비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는 것을 다 안다. 천연자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고급 인적자원인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자원의 단점이 시와 때를 놓치면 사장되고마는 특징을 가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재를 키울 때 기계로 공산품을 찍어내듯 동일한 조건과 잣대로 재단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자연에서도 사계절 피는 꽃이 다르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달라 삼라만상의 조화로 우리가 있고 또 살아 갈 수 있다. 대학 학문의 다양성은 자연의 사계절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의 특징에 따라 직업을 갖는 것도 그 시기와 때에 따라 다른데 이것을 무시하고 동 시간 취업이라는 하나의 틀에다 가둬 버리고 꽃과 열매가 생겨나기를 바란다면 이것의 미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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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정년에 대한 소고](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7/20150720.0102307585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