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립스틱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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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2  |  수정 2015-07-22 07:59  |  발행일 2015-07-22 제23면
[문화산책] 립스틱 단상

며칠 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암을 이겨낸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미색 립스틱이 화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예로부터 여성 몸의 붉은 빛깔은 건강과 번식의 상징이라 했다. 미인의 대명사인 클레오파트라도 딱정벌레와 붉은 개미로 만든 화장품을 썼다고 전해진다. 우리 선조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시대 여성은 잇꽃 연지와 백합꽃의 붉은 수술로 색분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면 남성화랑들도 여성 못지않은 화장과 장신구로 치장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가끔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대 앞에 홀로 앉아 입술주름을 그려볼 때가 있다. 붉은 입술이 조금은 야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면서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왜 새빨갛게 발라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말없이 은근한 미소로만 답한다. 내게 붉은색 립스틱은 일종의 자기표현과 만족이면서 사회와의 소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뇌신경과학자들이 발표한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법) 연구기록에 따르면 여성과 화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성은 화장을 함으로써 객관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물론 여성이 사회적 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화장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난 일화도 있다. 몇 해 전 서울시내 한복판의 시위 진압 현장에 여경이 배치되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외신기자는 보도에서 ‘성난 사나이들 같았던 진압경찰이 마치 평화 사절로 자리바꿈한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어쩌면 여경의 주머니에는 시위진압용 무기가 아닌 총알 모양의 립스틱이 비상호출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나이가 들수록 립스틱 사용을 즐겼으며, 임종 시에도 립스틱을 발랐다는 기록이 있다. “생산력 넘치는 여성으로 죽겠다”는 여왕의 말은 작은 것 하나에도 욕망과 역사적 배경이 있었음을, 인간사회적 본질이 녹아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치 있는 일상을 위해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면서 나의 내면도 분석해봐야 할 듯하다. 모 CF에 나왔던 멘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이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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