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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도 한다. 근데 예외가 있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경제의 원칙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최소의 효과를 위해서라도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니 머리 좀 잘못된 거 아이가?” “와?” “아니 돈도 없는 기 와 빚내가 세트를 그리 거창하게 만드노?” “글쎄, 그기 보기 좋으니까.” “….”
정부기관, 문화예술위원회, 문화재단 등 각계각층에서 요즈음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단체나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예술가나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기준으로 평가한다. 근데 그 평가의 기준 중에 묘한 부분이 있다. 관객이 많이 와야 된단다. 예술의 산업화를 강조하며 예술 지원에 경제 원칙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이럴 때 잠시 멍해진다. 관객이 많이 와서 흥행이 되어 수입이 많이 발생하는데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복지정책의 원칙과 같다. 복지에 경제적 원칙을 따질 수 있을까. 국가 경제의 여력이 되는 범위 안에서 국민에게 최대의 복지를 베푸는 것이 국가 복지정책의 원칙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에 경제원칙을 적용한다면 복지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국가의 예술 지원 정책에 경제논리를 적용시킨다면 가난한 예술가나 예술단체에 지원될 자금이 있을까.
예술과 국민복지에 대한 지원은 경제적 논리를 적용시킬 수 없는 국민 행복을 위한 기본정책이다. 다시 말해 예술과 국민복지에 대한 지원 정책은 최소한의 만족을 위해 최대한의 투자를 해야 하는 기초분야인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하고 국가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국가 기간산업이 발전되어야 하듯, 기초예술이 탄탄하게 뒷받침돼야 문화예술 산업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며 국민의 기초생활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을 때 국가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회화가 발전하지 않고 디자인 강국을 바랄 수 없다. 순수 무대 공연예술이 발전하지 않고 대중예술과 영상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국민의 기초생활 수준이 낮으면 고급 예술을 향유할 수 없다. 국민의 기초생활복지와 함께 국민의 예술 향유에 대한 복지정책도 같이 이루어진다면 대국민 복지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태석 <극단 예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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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과 복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8/20150814.01016072939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