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언어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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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4  |  수정 2015-09-24 09:30  |  발행일 2015-09-24 제21면
20150924

택시 승객 : “○○로 갑시다.” 택시기사 : “….” 목적지를 못 알아들었는지 궁금한 승객 : “○○로 갑시다.” 택시기사 : “….” 답답하고 불쾌해진 승객 : “어디로 가자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택시기사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승객 : “???”

점심시간의 식당. 집에서 싸우고 나왔는지 종업원이 불퉁한 표정으로 다가와 주문을 받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가버린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은 반찬 접시를 담요 위에 화투장 던지듯이 휙휙 던지고 가버린다. 손님 : “???”

시내버스. 큰 짐을 들고 올라온 할머니가 의자를 한 손으로 잡고 비틀거리며 서있다. 바로 코앞 교통노약자석에 앉은 여학생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뒷자리 남학생은 아예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다. 할머니: “???”

아주머니들의 대화. “그래, 그 사람 딸 이혼했다 카더나?” “이혼하는 바람에 그 어마이는 속이 상해 드러누웠다 카네. 남편도 병들어 있는데.” “여동생 집 딸도 몇 년 전에 이혼했다 안 했나?” “그카고 보이 그 집안은 이혼 집구석이네.” 승객들 : “???”

버스가 정류장에 급정거하는 바람에 80세 되어 보이는 노인이 손잡이 파이프를 잡은 채 3m쯤 앞쪽으로 미끄러지듯 쏠려갔다. 놀란 노인, 큰 소리로 “기사 양반, 차 좀 곱게 몰아요!”라고 말한다. 기사 : “죄송합니더.” 노인 : “승객이 다치면 우짤라꼬 그렇게 험하게 모노!” 기사 : “죄송하다 안 했십니꺼, 그렇게 불편하면 택시 타고 다니이소.” 노인 : “???”

거리의 남학생들 : “씨X, 그 새끼 X나게 맞아봐야 아나?” “야 이 새끼야, 니도 주디 조심해라, 씨X.” “야, ○○○ 선생 그 새끼, 상판대기도 보기 싫다.” 이런 학생들을 보는 어른들 : “???”

과학적인 한글, 아름다운 우리말이 사라져 가는 것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인가? 잔혹하고 거친 말을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비교양인들의 ‘야만의 영토’에서 겸손하고 부드럽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교양인은 할 말을 잊는 ‘언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의 인격이고 의식이며 문화의 수준이다. 문화국가의 명랑사회는 교양과 겸손, 친절과 웃음으로 시작된다.권원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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