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향촌동 예술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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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7  |  수정 2015-10-07 07:57  |  발행일 2015-10-07 제23면
[문화산책] 향촌동 예술인거리

대구시 중구 무궁화 백화점 동편에서 북성로로 이어지는 30여m의 거리를 ‘향촌동 예술의 거리’라 부른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대구로 피란 온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길에 머물렀다.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인 이 길에 있던 다방과 술집, 찻집을 드나들며 예술 활동을 하고, 울분을 토했다. 지금도 르네상스·판코리아·백록다방 등 일부가 남아있다.

이 골목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잊힌 지 오래인 예술가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은 어떨까.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인간적인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상황을 그려보자.

화가 이중섭은 민족교육의 산실인 오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일본 여인과 결혼했다. 그는 광복 후 6·25 참화를 겪으며 가족과 생이별하고, 이 길에 있던 판잣집 골방과 다방에 웅크리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연필과 붓, 스케치북이 없을 때는 합판이나 담배 은박지에다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유명한 ‘황소’ 작품도 이 골목 백록다방에서 은박지에 그린 작품이었다. 불멸의 천재화가에게 세계적 작품을 만들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은 우리시대의 비극이요,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오른 구상 시인도 이 길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6·25전쟁 당시 영남일보의 주간 및 편집국장을 맡았던 그는 이중섭을 비롯한 대구의 여러 시인, 묵객들과 이 길을 걸었다. 구상과 박용주의 우정에 얽힌 일화도 있다. 박용주는 교남학교 출신으로 대구주먹의 황제였다. 서울 종로 우미관 앞에서 김두한과 맞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다. 그런 그가 훗날 ‘시인’이 된 것은 구상의 애정어린 우정 덕분이었다. “휴먼폭력이 되라"는 구상의 추천으로 후일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것이다.

대구시는 한국상업은행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1∼2층은 향촌문화관, 3∼4층은 대구문학관으로 조성했다. 지하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감상실인 녹향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 거리에는 근대 예술인들 저마다의 이야기가 수없이 숨겨져 살아있다. 이웃에 있는 대구예술발전소와 더불어 낭만과 문화, 예술 혼이 살아 숨쉬는 거리를 창조하고, 재생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것은 대구 예술인과 시민의 몫이다.
제행명 <대구중구 골목문화 시니어 해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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