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주체적 음악가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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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3  |  수정 2015-12-03 08:04  |  발행일 2015-12-03 제23면
[문화산책] 주체적 음악가 세종
이현창 <대구시립국악단 악장>

세종대왕은 위대한 왕이자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 중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업적은 나라의 제도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여러 부문에서 실로 눈부시다. 그러나 그가 훌륭한 정치인인 동시에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일찍이 그는 뛰어난 음악성을 갖추었고, 박연이라는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음악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먼저 우리나라 악보인 정간보를 창안하였고, 이전까지 수입에 의존하던 악기의 제작을 가능하게 했으며 또한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는 등 조선시대 전기의 음악사는 세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그의 음악 업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전기는 중국 음악에 대한 사대사상이 강했던 시기라 궁중에서도 주로 중국 음악이 중심이 되어 의식이나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우리나라 음악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인식되어 소홀히 여겨지고 있었다. 세종은 이와 같은 관습을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나라 음악을 궁중 음악의 중심에 세워서 나라음악 사랑의 정신을 직접 보여주었다. 특히 전대 왕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을 우리 음악으로 직접 작곡한 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로, 세종의 우리음악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그가 종묘제례악을 작곡할 당시의 일화다. 당시 궁중의 제사는 중국 음악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당연시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 음악으로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곡을 작곡하였을 때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세종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설득했다 한다. “아악은 본래 중국의 음악이다. 중국 사람이라면 평일에 익숙하게 들었을 것이므로 제사에 연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을 듣고, 죽어서는 아악을 듣게 되니 어찌 된 셈인가?”

21세기를 글로벌시대 또는 다문화시대라고 한다. 오늘날 외국의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일 또한 그 이상으로 소중한 일일 것이다. 세종대왕의 주체적 신념이 있었기에 우리 음악이 아직 훌륭히 전승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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