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두부 |
![]() |
| <전통음식전문가> |
두부는 단백질이 풍부하여 ‘식물성 고기’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하여 누구나 좋아하고 즐겨먹는 음식으로, 기원전에 발명된 식품이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1596년에 쓴 ‘본초강목’과 우리나라 황필수가 1870년에 쓴 ‘명물기략’이나 ‘재물보’에 두부에 관련한 기록이 있다.
두부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한고조 유방의 손자인 화남왕 유안이다. 재주가 많은 유안은 신선이 되기 위해 팔공산에 머물며 제자들과 도를 논하고 기를 수련했다. 유안은 제자들과 불로장생할 수 있는 명약, 선단을 콩을 이용해 만들려 했으나 계속 실패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 “콩으로는 선단을 만들 수 없으나 먹으면 정력이 왕성해지고 건강에 유리한 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꿈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유안은 단맛이 나고 상큼한 팔공산 물과 콩으로 두부를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화남시에는 유안의 무덤이 있고 근처에 두부 발상지라는 비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원나라를 통해 전해 들어온 것으로 본다.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의 ‘목은집’ ‘대사구두내항’이라는 시에 “나물죽을 오래 먹으니 맛이 없었는데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워줘 늙은 몸 양생하기에는 더없이 좋다”고 했다. 사찰에서나 제수용으로 쓰이던 두부가 조선시대에 대중화되면서 그 기술이 발달해 중국보다 뛰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산릉을 모시면 반드시 인근에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를 두어 제수로 공급하게 했다.
지금도 제사상에는 두부를 꼭 올리는 풍습이 있다. 세종 14년 명나라 사신으로 간 공조판서 박신생이 명나라 황제의 서한을 갖고 왔는데,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음식 솜씨가 대단하다며 극찬하고 특히 두부 만드는 솜씨와 요리가 뛰어나다면서 앞으로도 두부 잘 만드는 궁녀를 보내달라고 적혀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습은 관재가 있으면 액땜으로 두부를 먹는 것이다. 경찰서나 교도소 앞에서 두부를 먹는 모습을 TV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영양이 많고 소화가 잘 되는 두부로 영양 보충도 하고 흰 두부처럼 깨끗하게 잘 살아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두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4/20160406.010300832290001i1.jpg)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두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4/20160406.010300832290001i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