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동성애는 찬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

  • 이은경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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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37면   |  수정 2016-07-01
20160701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 부대 행사가 열리는 오오극장에서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 영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배 위원장은 서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해 8회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되기 일찌감치 전부터 뉴스가 잇따랐다. 축제 자체의 이야기는 없고, 축제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축제보다 유명해진 축제 반대 시위. 많은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왜 축제를 반대하는가, 그들은 왜 반대하는 축제를 기어코 하려하는가. 과연 축제가 찬반의 대상이 되는가. 그 애매모호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40).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8년째 퀴어문화축제를 열고 있는 당찬 인물이다. 첫해 행사가 열리던 2009년 퀴어축제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물었다. “퀴어가 뭐꼬?” 여덟번째 행사가 열리던 지난 26일, 시민들은 따뜻하게 프리허그를 해주었고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변화의 바람’은 그렇게 불고 있었다.

 

2007년 性소수자의 사상 첫 총선 출마
응원차 이것저것 도우며 사회문제 눈떠
진보신당 위원으로 서울 퀴어축제 준비
성공 개최에 ‘대구서도…’ 꿈안고 복귀
‘인프라 부족’ 발로 뛰어 2009년 첫 행사

현수막 훼손·인분 묻혀 행렬 방해까지
고생에도 ‘한해만, 한해만 더…’ 8회째
이젠 참여 늘고 시민들 박수·포옹 ‘변화’
“여러 시민단체와 연대가 축제 성공의 힘
퀴어축제 통해 다양성 존중에 일조 자부”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시작된 변화

대학을 졸업하고 동성로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던 배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2007년. 민주노동당 최현숙 성소수자 위원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뉴스를 듣고부터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상 초유의 사건을 보면서 배 위원장은 민노당에 입당했다. 세상에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낸 최 위원장을 응원하기 위해 당비라도 내자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인력이 부족한 당을 위해 이것저것 일을 돕다보니 홍보처장으로 상근까지 하게 됐다. 대학시절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이상을 구체화시켜보겠다는 마음도 생겨났다.

이후 진보신당이 창당되면서 배 위원장은 당내 성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게 됐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편견을 깨고 당당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퀴어문화축제를 보면서 대구에서도 한번 해보자는 열망이 솟구쳤다. 부푼 꿈을 안고 대구로 내려온 배 위원장은 지역의 동성애 활동가와 시민단체 등을 끌어모았다. ‘당신들의 경험과 나의 열정을 더해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열어보자.’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실질적인 비용의 문제, 대구라는 지역적 특성, 시대적 분위기 등 여건과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직접 후원금을 얻기 위해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행사를 준비했다. 여기서 이대로 덮으면 앞으로 5~10년 안에 다시 하자는 말 꺼내기 어렵다, 어떻게 되더라도 해보자. 민예총, 민노총, 인디053 등의 도움을 얻어 2009년 6월20일 첫 축제를 열었다. 행사 당일 비가 내렸고, 얼굴엔 빗물인지 눈물인지 흘러내렸다.

뭐가 뭔지 몰랐고 그래서 용감했던 첫 행사를 마친 뒤에 정작 큰 고민은 시작되었다. 두번째 행사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축제를 한번 하고 그만둔다면 영원히 다시 할 수 없을 듯했지만, 한번 해보고 나니 얼마나 무모했던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연속성을 갖고 축제를 해보자.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몇 년만 끌고가면 그다음엔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동력도 만들어질 것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축제는 햇수를 더해갈수록 참여하는 인원도 늘었고 지원 단체도 많아졌다. 얼굴을 가리고 뒤쪽에서 숨어 서성거리던 이들이 퍼레이드 차량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진정한 커밍아웃이었다. 그렇게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포기하지 말자고 다독이며 지내온 세월이었다.

◆혐오와 차별없는 세상을 위하여

‘불어라, 변화의 바람’

올해 제8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린 이번 축제는 ‘불어라 변화의 바람-혐오없는 대구! 차별없는 대구! 평등한 대구!’를 주제로 6월24일부터 오는 3일까지 2주간 열리고 있다. 퍼레이드, 사진전, 영화제, 토크쇼, 연극제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원하는 변화란 무엇인가, 그 변화는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보게 된다.

지난달 26일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자긍심의 퍼레이드’에는 ‘무지개인권연대’와 청소년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대구경북성소수자 인권모임’, 영남대 퀴어동아리 ‘유니크’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했다. 대구백화점 앞에서 경북대병원을 거쳐 중구청 네거리와 중앙로역 네거리, 반월당을 돌아 대구백화점까지 돌아 오는 약 4㎞를 2시간 동안 행진하면서 소수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다.

배 위원장은 “지금까지 축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여러 시민단체와의 연대와 연결의 힘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자와 시민의 의식이 놀라울 만큼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계적으로는 동성결혼도 합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 속에서 혐오와 차별과 낙인으로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변화를 해야 하는가를 지역 사회와 함께, 다양한 소수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누구에겐 주어진 당연한 권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쟁하여 쟁취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혐오 세력에 의한 방해 공작도 거세지고 있다. 일부 기독교 세력에 의한 대구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가 시작된 것은 6회 축제부터였다. 청년단을 모집하고 저지기도회를 열고 집회 신고까지 하고 나섰다. 현수막을 찢는가 하면 온 몸에 인분을 묻힌 채 행렬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경찰청이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중구청에서는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야외무대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권리가 이들에게는 예외적으로 적용된 셈이다. 퍼레이드 금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중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지 못하고 내치는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소동에 따른 유명세 덕분인지 7회 퍼레이드에는 1천600명,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몰렸다.

올해는 반대 세력의 방해공작을 막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썼다. 지난해에는 반대 세력에 순서가 밀려 집회 신고조차 못했다. 올해는 퍼레이드 날짜를 비밀에 부쳤다. 007작전을 벌이듯 중부경찰서와 시경 두 곳에서 새벽 6시부터 줄을 섰다. 자정을 넘기자마자 첫째로 집회 신고를 마치고 우선권을 얻을 수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고 잘못된 정보가 넘쳐난다”는 배 위원장은 “제대로 알려야 한다. 퀴어문화축제가 갖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배 위원장은 “생존권을 걸고 심각하게 투쟁하는 집회라기보다는 경쾌하고 발랄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축제다. 이를 통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행사가 10회를 넘길 때쯤이면 더이상 혐오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믿고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한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희생시키다

따지고 보면 퀴어문화축제는 찬반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누구든 자유롭게 축제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축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으면 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문제가 되는 축제는 허가조차 받을 수 없다. 그 정도는 법률과 행정의 차원에서 규제되고 걸러진다. 그러라고 법이 있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듯, 남의 축제를 하라 마라 할 어떤 자유도 권리도 없다. 이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배 위원장으로서는 버겁고 아플 뿐이다.

“사회가 불안하면 손쉬운 공격의 대상을 찾아 공격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기득권을 지키고 키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소수자, 약자가 희생당하는 것이다. 성평등, 성차별금지, 성소수자 인권 등은 살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올랜도 총기사건도 마찬가지다. 올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불안의 사회를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배 위원장은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권은 합의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이건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없는 듯, 죽은 듯 살아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못내고 살아서 조용했을 뿐이다. 없던 것이 이제서야 나타난 것이 아니니 타인이 인정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바탕을 둔 낙인과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성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기반이 되는 ‘정상의 성’이라는 이데올로기도 극복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친화적인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다양한 성적 주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 추구권을 강화하고 차이와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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