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대구 달성군 HD현대로보틱스 본사 생산공장에서 직원이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구가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중추 거점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부터 농업용 자율주행 로봇까지 완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양산하는 대형 앵커 기업들이 지역 내 핵심 거점을 구축하며 생태계 전반을 견인하는 구조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중심이던 대구의 정밀 기계 가공 인프라는 로봇 산업과 결합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기술력을 갖춘 지역 중견기업들이 핵심 부품 국산화에 성공하며 '부품-모듈-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완결형 밸류체인이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생산 라인 무인화와 인공지능(AI) 기술 탑재를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대구 주요 로봇 기업들의 제조 현장과 혁신 전략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지난달 29일 대구 달성군 HD현대로보틱스 본사 생산공장에서 세척 로봇이 생산 중인 산업용 로봇을 세척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로봇이 로봇을 조립한다' HD현대로보틱스의 무인화 혁신
지난달 29일 오후 방문한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에 자리 잡은 HD현대로보틱스 대구 본사. 23,140㎡(7천평) 규모, 연간 1만 대 생산 능력을 보유한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다관절 로봇 팔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제조 라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외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은 모듈을 조립하는 메인 라인에서는 다양한 색상으로 도색된 산업용 로봇들이 또 다른 로봇의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비전(Vision) 기술이 적용된 카메라는 개별 부품의 볼트 구멍 위치를 정밀하게 인식해 오차 없이 볼팅 작업을 수행한다.
공장 한편에 마련된 도장 전처리 및 세척 공정은 무인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밀폐형 자동세척(Automatic Cleaning) 부스 안에서는 방진복 형태의 흰색 보호 덮개를 씌운 다관절 로봇 팔이 고압 세척액을 분사하며 조립이 끝난 다른 로봇의 관절부와 표면을 정밀 타격하고 있었다. 과거 작업자가 직접 방진복을 착용하고 유해 화학물질과 분진에 노출된 채 수행해야 했던 3D 작업을 로봇이 전면 대체했다.
조립과 도장을 마친 로봇은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배선 공정으로 옮겨진다. 고객사들의 요구사항에 따라 배선이 모두 다르기 떄문에 이 공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이후 완제품 로봇의 시운전은 전력 소모가 적은 심야 시간대인 새벽 3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일제히 무인으로 진행된다. 시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 상태를 점검한 뒤 합격 판정을 받은 제품만 납품 라인으로 이동하며, 신규 개발품의 경우 최장 세 달간 연속 가동하며 내구성을 검증한다. 1984년 현대중공업 내 로봇사업본부로 출발해 1995년 국내 최초로 산업용 로봇과 제어기를 국산화한 HD현대로보틱스는 현재 전체 임직원 약 460여 명 규모로 R&D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모비스 배터리 라인에 자동 적층 시스템을 납품하는 등 단순 단품 공급을 넘어 고객사에 맞춤형 자동화 설비를 구축해 주는 종합 로봇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구 달성군 HD현대로보틱스 본사에서 박종찬 생산·지원 부문장(상무)이 산업용 로봇 생산 공정과 회사 운영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 "강력한 정책 투자와 그룹사 실증 인프라가 핵심"
HD현대로보틱스는 타사 대비 압도적인 기술적 해자로 '그룹사 내 실증 인프라'를 꼽는다. 박종찬 HD현대로보틱스 생산·지원 부문장(상무)은 "조선, 건설기계 등 중공업 현장은 용접, 사상, 도장 등 고도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특수 공정이 많아 현장의 암묵지(도메인 지식)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러한 핵심 노하우를 외부 유출 없이 HD현대중공업, HD현대건설기계 등 그룹사 내부 인프라를 통해 즉각적으로 실증하고 솔루션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가진 최대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28일 오후 경남 창녕군 대지면 일대 마늘밭에서 대동의 AI트럭이 앱을 통해 골작업 명령을 받아 구동되고 있다. 이동현 기자
박 부문장은 대구가 진정한 로봇 수도로 자리잡기 위해 지자체의 파격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중국 허베이성 지방정부가 45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을 자국으로 블랙홀처럼 흡수했다"며 "대구시 역시 보조금 지급 수준의 전통적 지원을 넘어, 유망 로봇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형태의 선제적이고 강력한 정책적 결단이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HD현대로보틱스는 제조 솔루션 실증을 위한 테스트 필드(PoC) 구축을 준비하며 대구시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 4월29일 대구 달성군 대동모빌리티에서 개최된 대동 'Tech Day(테크 데이)'에서 강성철 대동로보틱스 대표이사가 자사의 2030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대동 제공>
◆ 대동, 농기계를 넘어 AI 자율작업 플랫폼으로
전통적인 농기계 제조기업에서 첨단 애그테크(AgTech) 기업으로 진화 중인 대동은 농업용 AI 로봇 사업을 전담할 대동로보틱스를 2024년 10월 출범시키며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대동로보틱스는 지난 4월 말 개최한 '테크 데이(Tech Day)'를 통해 노동력 부족과 기후 위기, 식량안보 위협 등 농업 생태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AI와 로봇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핵심 혁신 사례는 비정형 환경에 특화된 자율주행 기술이다. 농업 현장은 흙먼지, 안개, 불규칙한 노면 등 변수가 많아 일반적인 자율주행 기술의 적용이 까다롭다. 대동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제어기(ADCU 2.0)와 비전 카메라, 초정밀 위치정보(RTK-GNSS)를 융합해 로봇이 스스로 경작지와 장애물을 인식하고 경로를 생성하는 레벨 4 수준의 무인 자율 작업 트랙터 'HX1400' 시리즈를 구축했다. 공개된 다목적 자율주행 운반 로봇 'RT100'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음성 인터페이스를 탑재해 작업자의 음성 명령만으로 목적지를 찾아 이동하고 물품을 운반했다.
강성철 대동로보틱스 대표이사는 "농업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데이터 중심의 인공지능 경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랙터 중심의 주행 자동화를 넘어 로봇이 작업 환경을 완벽히 이해하고 농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는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영농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 작업, 정밀 농업, 유지 보수까지 포괄하는 로봇 구독형 서비스(RaaS) 비즈니스 모델로 대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강 대표이사는 "대동로보틱스는 2030년까지 글로벌 농업 로봇 및 모빌리티 시장 규모가 1천239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자율주행 플랫폼 기술을 디봇 보수, 건설 자재 운반 등 비농업 분야로 적극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견기업의 부품 자립과 대구시 완결형 밸류체인
앵커 기업들이 완제품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역 중견기업들의 탄탄한 부품 국산화 역량이 존재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가공에 주력하던 대구 지역 기업들이 로봇 핵심 부품 제조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며 공급망을 두텁게 다지고 있다.
삼익THK는 로봇의 뼈대와 관절 역할을 하는 직교로봇 및 직선운동시스템(LM가이드) 분야에서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관절 로봇의 핵심인 정밀 감속기 고부가가치 부품 개발에 R&D 역량을 집중하며 일본산 부품 의존도를 낮추는 데 주력 중이다. 아진엑스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션제어 칩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제어기를 국산화한 데 이어,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을 위한 범용 제어 플랫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 부품의 기술 자립화는 완제품의 품질 안정성과 원가 절감으로 직결되며 지역 산업의 기초체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대구시는 이러한 앵커 기업과 중견기업의 산업적 자산을 묶어 '완결형 로봇 생태계'를 고도화한다. 부품 제조부터 실증, 완제품 양산에 이르는 자체 공급망을 활용해 달성군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조성 사업과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해당 인프라 구축이 본격화되면 지역 로봇 기업들의 신기술 검증과 상용화 리드타임이 대폭 단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의 중심축을 전통 기계 제조에서 첨단 지능형 로봇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는 대구시의 산업 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윤정 대구시 기계로봇과장은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 AI로봇 글로벌 혁신 규제자유특구 지원사업 등 굵직한 사업들에 선정돼 로봇산업 진흥에 강점이 있다"며 "HD현대로보틱스 등 지역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로봇 기업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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