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대구 북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찾은 경북대 로봇신소재공학과 대학원생들이 다관절로봇 활용 다중포인트 누락여부 검사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지난 8일 오후 대구 북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찾은 경북대 로봇신소재공학과 대학원생들이 인쇄회로기판 및 전자부품 실장기판 코팅제 도포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벚꽃비가 흩뿌리던 지난 8일 대구 북구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제조AX 상설전시관에 모여든 경북대 대학원생들의 시선은 쉼 없이 움직이는 로봇 팔에 집중됐다. 로봇은 제조 현장의 인쇄회로기판 검사 및 코팅 공정을 구현한 것으로, 로봇 핸드를 벌려 미세 부품을 집은 후 목표 지점까지 옮기는 정밀한 움직임이 관전 포인트다. 배추심 제거부터 자동차 엔진 부품 가공, 신발 작업, 선박 모서리 가공 공정에 이르기까지 한 치 오차 없는 로봇의 완벽한 퍼포먼스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제2전시장(첨단로봇 실증지원센터)에 들어서자 제조라인을 통째 옮겨온 듯한 규모에 압도됐다. 5G 통신기반 제조로봇 활용 첨단 제조공정 및 통합관제시스템 등 실증 테스트 지원공간인 이곳에선 산업용 로봇 4대와 협동로봇 16대, 자율주행 모바일로봇 4대를 비롯해 5G 무선통신관제시스템 및 디지털 트윈 장비 등 스마트 제조현장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로봇공학 박사과정을 밟는 윤정환(36)씨는 "필드에서 어떻게 실증사업이 이뤄지는지 체험할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을 인솔한 김영석 경북대 명예교수(기계공학과)는 "강의실에서 비디오와 텍스트로만 로봇을 배웠던 학생들이 실증현장을 둘러보며 로봇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의 인프라가 대구에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로봇도시 대구의 일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로봇 최고기관이 대구에 둥지를 튼 이유
지난 8일 오후 대구 북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찾은 경북대 로봇신소재공학과 대학원생들이 커넥터 체결/PCB 조립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010년 대구에 둥지를 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국내 로봇산업 정책의 수립과 실행을 담당하며, 산업 성장까지 지원하는 국내 로봇 관련 최상위 기관이다. 기술개발, 실증, 보급 등 전 과정에 걸친 지원을 통해 로봇을 산업 현장에 적용하고, 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표준·인증 등 제도적 기반을 운영해 산업의 신뢰성 및 안전성을 확보하고, 최근에는 AI와 결합된 지능형 로봇산업으로의 전환에도 대응하고 있다. 자타공인 국내 로봇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견인하는 최고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진흥원이 대구에 온 이유는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전략산업 육성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대구는 기계·부품 중심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도시로, 자동차부품 등 주요 산업군이 로봇과 연계성이 높아 산업 육성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특히 로봇은 기존 제조업의 자동화와 고도화를 이끄는 핵심 기술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대구의 산업구조와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당시 대구에서 기업·연구기관·지원기관을 집적하는 로봇산업 클러스터 구축 전략이 추진되면서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던 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진흥원 설립 이후 대구는 국내 로봇산업의 대표 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1년 23곳에 불과했던 지역 로봇기업 수는 현재 270여곳으로, 무려 10배 넘게 늘었다. 파생 효과도 막대하다. 설립 이듬해 2천300억원 규모 로봇산업클러스터의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됐고, 500억원 규모 5G 기반 첨단제조로봇 실증센터도 조성됐다. 2천억원짜리 국가로봇테스트필드도 곧 구축될 예정으로, 대규모 실환경 실증과 데이터 기반 검증이 가능해지면서 로봇기술의 상용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산업용 로봇 1위 기업인 HD현대로보틱스의 대구행도 진흥원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진흥원 유치에서부터 'AI로봇 수도 대구'의 여정이 시작됐다는 게 산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유성열 계명대 교수(로봇공학전공)는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로봇 정책의 시작점이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보면 대구에서 국내 로봇 정책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며 "로봇 최고기관 입지로 대구가 얻는 인프라 및 기업 집적 효과는 막대하다. 진흥원 유치가 대구 로봇산업 부흥의 출발점이라는 건 자명하다"고 말했다.
◆"전략의 승리였다" 유치전 막전막후
양승한 경북대(기계공학부) 교수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 전후 사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전략의 승리입니다. 로봇공학전공을 만든 게 주효했습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대구에 올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양승한 경북대 교수(기계공학부)의 대답이다. 2007년부터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일원으로 활약한 그는 대구시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 전략을 총괄한 인물로 꼽힌다.
섬유산업 호황이 저문 2000년대 들어 대구에는 산업계 체질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2008년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로봇법)' 제정에 따라 탄생할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는 대구로선 절대 놓칠 수 없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양 교수는 "당시 대구 숙제는 주력산업인 기계금속의 고도화였다. '메카화'에 주력하던 상황에서 (로봇법 제정으로) 로봇으로 급선회했다"며 "산업계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에서 진흥원 유치는 대구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다"고 회상했다.
전략은 주도면밀했다. 대구에 로봇 관련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에서 임팩트 있는 타이틀이 필요했고, 이는 경북대 공학계열 대학원에 '전국 최초' 로봇공학과 신설로 이어졌다. 그는 "당장 필요한 건 로봇산업을 이끌 석·박사급의 엔지니어들이었다. 1970년대 많은 전자공학 전문인력을 배출하며 국가 IT산업 발전에 초석을 닦은 대구가 이젠 로봇공학 인력을 양성하며 로봇산업을 견인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로봇공학전공 신설을 시작으로 대구는 본격적인 로봇도시 구색 갖추기에 돌입한다. 로봇기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로봇협회가 설립됐고, 기업과 대학을 연결할 로봇진흥센터도 이때 만들어졌다. 양 교수는 "중앙에 '준비된 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했다. 이명규 전 국회의원(대구 북구갑) 등 지역 정치권의 역할도 컸다"며 "대구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최하위라는 부끄러운 현실도 진흥원을 유치할 무기로 쓸 정도로 절박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유치한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이들의 바람대로 'AI로봇 수도'의 초석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양승한 교수는 "진흥원 유치 이후 로봇산업클러스터, 5G 기반 첨단제조로봇 실증센터, 국가로봇테스트필드까지 핵심 기반시설을 줄줄이 따냈다. 진흥원의 존재가 크게 작용한 결과"라며 "지역 로봇 생태계를 이끌 앵커기업만 좀 더 늘어난다면 AI로봇 수도의 꿈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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