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디지로그 할배’…“내 손 거치면 안되는 게 없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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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7-04-07  |  발행일 2017-04-07 제면
■ 교동상가 극동TV 강연석 사장
교동전자상가 최고령 가전제품 수리전문가
납땜 등 작업으로 ‘옹이 진 손가락’ 삶 대변
美 시어스 9인치 흑백TV·2m 작업대 ‘보물’
대구 옮겨와 일 시작 때부터 ‘반세기 동반자’
20170407
51년 간 고장난 가전제품에 생명을 부여해주면서 전기전문가로 살아온 강연석 사장. 작업장은 비록 어둑하지만 그의 여든다섯해를 기억하는 눈매만은 여전히 초롱하기만 하다. 한없이 시달린 그의 손은 어느새 나무 작업대를 닮아버렸다.

삶이라는 것. 그게 이마 주름살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난 그 삶이 손금에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고 믿지. 난 얼굴을 갖고 산 게 아니었어. 오직 이 두 손을 갖고 아내와 5남매를 먹여살렸지. 그 시절 아버지는 다 그랬어야만 했어. 밥벌이란 참 숭고한 일이라 생각해. 그 밥벌이에는 우열이 없지. 그런데 지금 세상은 말이지, 모두 괜찮은 밥벌이만 갈구하잖아. 괜찮은 밥벌이가 딱히 있다고 믿는 세상은 정상이 아냐. 자기 길(밥벌이)을 찾으면 그게 성공이지. 가장 좋은 밥벌이?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돼.

세상은 항상 변하지. 한때 불야성의 교동전자상가(이하 교동상가)도 요지부동이라면 그건 사리에 맞지 않지. 교동상가도 자기 시절이 있었어. 하지만 그게 수백년, 수천년 영속되길 바라는 건 탐욕이지. 이제 교동상가는 분명 호시절은 아니야.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건데, 그렇다고 유명무실한 것도 아니지. 아직도 가전제품을 고쳐가면서 자신만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려는 아날로그 마니아들도 있어. 그들이 드문드문 해묵은 제품을 갖고 어둑하기 이를 데 없는 동굴 같은 내 가게로 찾아오지. 그럼 난 납을 덧대 끊어진 회로를 다시 이어주고, 너무 낡은 건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해주고, 찌든 때도 염산 등으로 벗겨주고…. 그렇게 죽었던 제품은 내 손에서 환생하지.

새것만큼 낡은 것들도 자기 주장을 하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단언컨데 난 은퇴는 없어. 암 없지. 어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곰보처럼 생긴 이 2m 남짓한 작업대에서 임종한다면 난 세상에서 가장 복많은 사람이 될거야.

한때 서울 세운전자상가와 함께 대한민국 양대 전자상가로 유명했던 교동상가. 세운상가가 용산전자상가한테 명맥을 뺏겼듯 교동상가도 1994년 생겨난 북구 유통단지 내 전자관으로 인해 성장동력원을 상실하게 됐지. 구세대는 신세대를 이길 수 없는 것이지만 부모 없이 어찌 자식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구세대 없이 신세대도 없으니 이 늙은이의 지난 경험담도 후학들에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

좀 부풀려 말해 내 손 안에 대한민국 가전제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난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가 사용했던 그 다양한 모델의 라디오·TV를 모두 수리해왔지. 그래, 내가 보여줄 게 있어. 50년 전 교동상가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내 곁에 입양됐던 추억의 미국 시어스(SEARS)가 제작한 9인치 흑백TV야. 참으로 기능이 단순해. 중파 구실을 하는 UHF, 단파 구실을 하는 VHF, 그리고 뒷면에 보면 흑백 음영의 강도를 조절하는 레버 두 개. VHF 채널은 2부터 13번까지만 있지. 9번은 KBS, 11번은 MBC였겠지. 지금 고화질 TV에 등장하는 채널은 수백개가 넘지. 실물보다 더 또렷하고 밝게 보이는 화면이 솔직히 내겐 너무 부담스러워. 다른 모델의 가전제품은 거의 내 품을 다 떠났지만 이 놈만은 여태 내 작업대에 목각인형처럼 앉아 날 응시하고 있지.

손님이 없을 땐 가끔 내 손을 요모조모 세밀하게 뜯어봐. 그렇게 험할 수가 없어. 젊은 시절 피부에 흐르던 그 윤기는 증발된지 오래. 반세기 동안 계속된 납땜. 그 후유증으로 짓물러버린 엄지손가락에는 밴드가 떨어질 날이 없어. 겨울철이면 더 옹이처럼 변하는 내 손이 어떨 때는 고향 뒷산 낙락장송 가지 같아.

내 이름은 강연석. 올해 여든다섯. 전남 나주군 산포면 송림리에서 1932년 태어났지.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어. 그 무렵 민초들의 삶이란 게 거의 찢어질 듯 아팠지만 난 비교적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지. 다른 친구보다 3년 늦게 출생신고를 했어. 당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지. 첫돌 전에 홍역 등 갖은 병으로 죽는 애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야. 이제 전기 얘기를 할 차례인 것 같아. 전기(電氣)는 분명 내 삶의 강력한 전기(轉機)였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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