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모마(MoMA)와 키치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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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5   |  발행일 2018-08-25 제23면   |  수정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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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뉴욕의 미술관 중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는 곳으로는 ‘모마’라고 불리는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이 제일 앞에 온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이때는 대기 줄이 아주 길게 늘어선다.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도 무료 일시가 있고 워싱턴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상시 무료 개방이지만 모마만큼 붐비지 않는다.

유독 모마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마는 전시장 규모에 비해 인상파의 작품이 많은 편이고, 고흐· 피카소·앤디 워홀의 대표작도 전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서양현대미술사 책을 통해 볼 수 있는 주요 작품들이 즐비하다.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챙기고자 노력하게 되는 ‘정말 유명한’ 작품이 도처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양현대미술 안내서 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준다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작품이 많다는 것, 이것이 모마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내는 이유라 하겠다.

모마의 작품이 현대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모마를 찾는 사람들의 동기와 그들이 갖게 되는 심정의 예술적 가치를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사정은 반대에 가깝다. 모마의 작품들은 ‘그 유명한 작품을 나도 보았다’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만족시키는 기능을 할 뿐이다. 약간 심하게 말하면 그러한 기능을 하게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의 구성과 작품의 배치가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사실 모마에서는 작품을 감상하기가 어렵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그림 한 구석이라도 정면에서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러한 상황이 모마에서는 아주 흔하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같은 경우는 혼잡의 정도가 ‘모나리자’와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마의 현대미술은 관람객 대부분의 예술 취향을 키워준다거나 심미안을 높여주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달리 말하자면, 모마를 채우는 사람 상당수가 바로 그러한 욕망에 이끌린다고 할 만하다. 속물적인 욕망이라 해도 예술에 대한 것이니 괜찮다고 할 것은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봤다는 사실에서 만족을 느끼는 그런 심정은 턱없는 자부심 혹은 자기 과시의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 자체를 감상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과시하는 행위를 키치(Kitsch)라고 하는데, 이는 외국 어디를 가 봤다거나, 어떤 음식을 먹어 봤다거나, 유명인 누구를 만나 봤다거나 하는 식의 자기 과시적인 글쓰기, 곧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자랑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챙겨가면서 보지만 미술관을 찾지는 않는 경우보다는 여행객의 입장에서든 뭐든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훨씬 낫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술관에 가봤다는 사실 때문에 낫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에 들러 작품들을 접해 보는 것이 문화생활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딱 그만큼의 의미에서만 바람직한 것이다.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 공부를 해야 한다. 서양현대미술사에서 세잔이 중요하고 고흐가 뛰어나며 피카소가 위대하다고 할 때 왜 그런지, 뒤샹이나 워홀·제프 쿤스·데미언 허스트가 주목받고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책이나 강연을 통해 전문가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작품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하는 데서 나아가 그 작품들과 자신 사이에 특유의 관계를 맺으며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이 예술 또한 배운 뒤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법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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