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등탑시에 있는 고구려 백암성.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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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성의 위용. 고구려산성의 특징인 치가 잘 나타나 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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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성 뒤에는 태자하가 흘러 천혜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
| 중국 대련시에 있는 비사성. 고구려천리장성의 끝이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
대사 중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양만춘(조인성 분)이 사물(남주혁 분)에게 "너는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만 전쟁을 하는 줄 아느냐"라고 한 말이다. 그렇다. 질 게 뻔한 싸움이라도 해봐야 하는 게 전쟁이고 싸움이다. 지난 월드컵축구 때 우리가 독일을 꺾을 수 있다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역사적으로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이긴 예는 많다. 신라 장보고의 5천 기마대가 대구에서 민애왕의 정예병 10만군사를 이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수대첩의 을지문덕은 또 어떠했는가. 김정산의 소설 삼한지에 보면 을지문덕 휘하에 양만춘이 있다. 양만춘은 훌륭한 참모로 나온다.
각설하고, 안시성을 보면서 10여 년전 중국 동북3성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성을 답사한 기억이 떠올랐다. 흔히 고구려를 산성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곳엔 고구려역사가 숨쉬고 있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고구려의 초기 수도였던 집안과 환인 주변엔 산성이 많다. 이에 비해 연변이나 흑룡강성, 연해주엔 발해 산성이 많다.
평양에 도읍을 옮긴 후에도 고구려는 수·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요동지역에 많은 성을 쌓았다. 천리장성이 바로 그것이다. 천리장성은 이전부터 요동에 있던 성을 증·개축한 것이다. 영류왕 때 시작해 보장왕 때까지 16년간 쌓은 기록이 나온다. 연개소문은 당에 머리를 조아렸던 영류왕 고건무를 폐위시키고 보장왕을 옹립해 실권을 차지한다. 당의 힘이 강성해지면서 고구려가 위축됐을 때다. 연개소문이 당과 일전불사의 의지를 드러낸 역사적 기록은 구당서, 신당서, 삼국사기 등에도 나온다.영화에 보듯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야전장군으로서의 책임만 다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르지만 만주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성곽은 대략 요녕성에 100여 개 길림성에 50여 개가 남아 있다. 천리장성은 요동반도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이다. 요동반도는 요하 동쪽 압록강 지류인 애하 서쪽까지를 일컫는다. 이곳은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중간지대로 발해만과 황해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군사적요충지다. 또한 철생산 중심지다. 그러하기에 요동에 산성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요하 옆 태자하, 혼하 사이 천산산맥 줄기에 주로 성곽이 축조됐다.
고구려 성곽은 평지성보다 산성이 중심이다. 집안의 국내성과 평양의 안학궁은 대표적 평지성이다. 이에 비해 산성은 주위 산세와 강을 적절히 이용한 배산임수 형태다. 영화에서 보듯 안시성도 그러하다.
천리장성은 부여 농안(현재 길림성 장춘부근)에서 비사성(요녕성 대련시)까지 이어진다. 실제 이 길이는 2천리가 넘기에 보통 천리장성은 신성(무순시), 개모성(심양시), 요동성(요양시), 백암성(등탑), 안시성(해성시), 건안성(개주시)을 축으로 발해만의 끝인 비사성까지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성곽으로 연결됐다면 고구려는 군사요충지를 중심으로 떨어져 있다.
신성은 무순의 고이산공원에 있다. 고이산은 고려산의 전음이다. 고이산공원에서 바라보면 언덕 위 요나라 때 전탑이 보인다. 신성의 점장대다. 개모성은 요녕성의 가장 큰 경상도촌인 소가툰 연맹촌 화원신촌에서 약 20km떨어져 있는 탑산공원에 있다. 지금은 공동묘지로 변해 찾기 어렵다. 고구려 최대의 요동성은 요양시 한복판에 있었는데 찾기 어렵다. 해성시의 영성자산성이라고 알려진 안시성은 2005년 당시 외국인출입금지구역이라 갈 수 없었다. 중국동포들도 그곳에 못 가봤다고 했다. 안시성은 4km쯤 되는 토성으로 돼 있다고 한다. 돌무더기, 성벽, 우물터가 보존돼 있지 않다고 들었다.
백암성은 두 번 가봤다. 심양에서 요양까지 차로 1시간 20분 달리면 등탑시가 나온다. 이곳에서 서대향 쪽으로 다시 1시간 가면 보인다. 서대요에서 연주촌을 찾으면 된다. 중국에선 백암성을 연주성이라 부른다. 실제 산제비가 많이 산다. 백암성은 회백색 석회암으로 쌓은 성이다. 인근에 석회암 채굴지가 있고 군부대도 있다. 태자하를 끼고 있어 천혜의 요충지다. 백암성은 만주에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고구려산성이다.
백암성은 웅장하다. 길이는 2.5㎞ 정도인데,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태자하도 절경이다. 5개의 치도 멋지다. 점장대에 올라가면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물터와 창고터도 온전하게 보전돼 있다. 아쉬운 건 누군가가 성돌을 빼간 듯 동쪽 성축이 더러 훼손돼 있었다. 백암성이 이 정도로 보전돼 있는 건 기적에 가깝다. 1400년이 지나도 이 정도이니 대단한 것이다.
영화에서 보듯 645년 당태종은 천리장성 북방 현도성과 개모성을 뺏고 요동성마저 함락시킨 뒤 그 여세를 몰아 백암성을 공격했다. 백암성은 안시성에 비해 훨씬 지리적 조건이 좋았다. 당태종 이세민은 천혜의 요새인 백암성을 보고 바로 공격하지 못하고 회유책을 썼다. 성주 손대음(혹은 손벌음)을 꼬드겨 백암성 일대를 암주로 만들고 자사로 삼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선 오른팔 이적과 함께 각각 서남쪽과 서북쪽으로 밀고 갔다. 요동성이 함락된 후 연개소문은 백암성을 지키기 위해 오골성(봉황성)의 군사 1만을 보냈으나 손대음의 배신으로 성문은 쉽게 열렸다. 아마 손대음이 연개소문의 측근이었을 것이나 그는 배신했다. 저항했던 군사들과 성민은 포로로 끌려가고 손대음은 당나라에서 출세했다고 알려진다.
이렇듯 백암성과 같이 당나라에 항복했거나 비교적 쉽게 함락됐던 비사성은 그런대로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당에 최대의 치욕을 안겨준 안시성을 비롯해 요동성, 신성 등은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만주가 우리땅이면 그렇게 방치했을까. 게다가 안시성은 금단의 구역이다. 치열했던 전쟁속에 이미 뭉개져버렸거나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보복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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