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애국가, 이대로 계속 불러야 하나?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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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1 00:00  |  수정 2019-05-01
20190301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나라의 자주적인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때에 이 나라의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위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이전 부터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의 친일 행적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심지어 이전에 몰랐던 친 나치 행위마저 알려지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과연 그가 작곡한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애국가를 바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미 이 민족이 70여년 불러온 애국가를 바꾸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애국가라는 특별한 음악,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이라면 그를 작곡한 사람에게 기본적인 도덕성이 당연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누구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적어도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작곡자가 작곡한 곡을 애국가로 부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충분히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각 나라마다 고유한 선정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그 나라가 생성 발전 되어온 과정에서 그들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최근 이문제가 새롭게 떠올랐다. 최근, YTN, SBS등 주요 언론에서 안익태의 새로운 친일행적, 나아가 친 나치 행적까지를 보도하면서 부터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적이 알려진 후에도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비율이 24.4%, 바꾸지 않아야한다는 비율이 약 58.8%로 나타났다.(자료: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5092589)
 

그러면 이대로 계속 현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가는 한 나라의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애국가라면 음악적 작품성과 그 작품의 작곡배경, 역사적 당위성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음악의 상징성
 음악은 추상적 예술이다. 한편 강한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나 항상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비장한 용기와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가진 것이 음악이다. 종교음악이나 독립운동, 전쟁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시위음악 같은 노래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런 경우의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이 역경 앞에서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큰 정신적인 힘을 준다.
 

핀란다아, 마르세이예즈(LA MARSEILLAISE), 아침이슬.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이예즈(LA MARSEILLAISE) 같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라 마르세이예즈는 현 프랑스 공화국의 국가이며 프랑스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이다. 마르세유(Marseille)의 노래, 마르세유 행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자료: 나무위키-https://namu.wiki/w/라%20마르세예즈)) 이는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 초기에 혁명을 위한 전쟁가이자 자유를 위한 찬가였다. 그 후 점차 국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국가행사, 월드컵, 올림픽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식행사에서 프랑스 국가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이 후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김민기 작곡 '아침이슬'을 불렀다. 아침이슬은 탱크까지 동원한 군부를 상대로 시민들이 맨손으로 벌인 항쟁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이다. 이처럼 전쟁이나 투쟁에 사용되는 음악은 수많은 군중을 하나로 묶어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각국의 국가에도 이런 음악의 힘이 내재해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애국가를 함께 부르며 자신의 조국을 위해 하나로 뭉친다. 이때 음악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국가는 그 나라를 대표, 상징하며 국민들의 한마음으로 통합시켜준다. 이런 국민통합의 배경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깔려 있다.


◇현 애국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의문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 애국가의 역사적 배경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던 음악의 작곡자에 대한 새로운 행적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다. 나아가 친 나치행적까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현 애국가를 불러온 시간이 벌써 60~70여년이다. 여러모로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지금껏 그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진심으로 불렀던 애국가의 작곡자의 반민족적 행위가 알려지자 모두들 당황스러워하는 상황이다. 필자도 수 년 전 안익태 친일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참 황당했으며 사실이 아니기를 마음 한편에서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날이 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친일 행적뿐만 아니라 친 나치 행적까지 갖가지 자료들과 함께 드러나고 있다.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까?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몹씨 허탈하고 허무하다. 학창시절부터 교내행사부터 올림픽까지 수많은 이벤트마다 가슴 뭉클하게 불렀던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당황스러움은 여론 조사에도 잘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59%)의 응답자가 이런 상황에도 현애국가를 바꾸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한다.(자료: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5092589)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우리가 이미 현 애국가에 익숙해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자신들의 인생의 길이만큼 지금의 애국가를 불러왔을 테니까 그 어떤 노래 보다 깊이 정신에 새겨져있을 것이다.


◇현 애국가의 음악적인 면
 음악적으로만 봤을 때 현 애국가는 잘 만들어진 곡이다. 16마디 2부 형식의 짧은 곡이지만 고도의 기승전결을 가졌고 장중한 분위기, 가사와 잘 어울리는 선율과 리듬을 가지고 있다. 단순 명료하여 함께 부르기도 좋은 곡이다. 음악적으로는 여러모로 잘 작곡된 곡으로 볼 수 있다.


◇애국가로서의 정당성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봐야한다. 바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애국가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안익태의 애국가로써의 당위성 또는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위에 보도된 기사의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이는 민족의 수난시기에 반민족적 반역행위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곡이 나라를 대표하는 애국가가 아니라면 어쩌면 큰 문제가 되지 아닐 수도 있다. 더 이상 부르지 않으면 그만일 테니까. 그러난 국가는 앞으로도 국내외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해야한다. 그렇다면 대표성, 상징성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족에 반역적인 일을 한사람이 작곡한 곡이라면 애국가로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작곡자 개인적인 사사로운 실수나 경범죄를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작곡자가 역사에서 민족에 대하여 반역적인 일을 한 사람이라면 애국가의 작곡자로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친일, 친나치의 의미
 우리 역사에서 친일은 어떤 의미인가? 이 나라 역사에 일본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우리 역사에 수많은 환란들이 있었지만 일제 36년간만큼 잔인하고 굴욕적인 역사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병자호란이나 다른 민족적 수난들이 괜챦다는 의미는 물론 절대 아니다. 일제 36년간의 상대적 악날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필자와 동세대들은 일제시대를 직접 격은 당사자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전해 듣는 이야기들만으로도 우리 모두 그들의 잔인함과 비열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들의 만행은 아직도 어떤 면에서는 진행형이다. 일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일본은 우리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도덕성을 가진 나라는 아니다.
 

친 나치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대학살에서 희생된 유태인 숫자만 대략 6백만 명이다. 더 말 할 필요 없이 이는 인류에 대한 중범죄이다. 안익태가 이런 나치의 프로파겐다 역할을 했다는 것은 중대한 반인륜 범죄를 지은 것이다.
 

이런 아픈 역사의 상처 가운데 있는 우리가 그런 비열한 역사에 일조한 배신자가 작곡한 노래를 익숙하다는 이유로 계속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 선율이 좋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작곡한 노래를 애국가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적어도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정당한 나라를 물려주려 한다면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러나는 애키타이 안(あんえきたい)의 친일 행적
 안익태(安益泰, 1906~1965)의 일본 이름이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인 드러난 것은 10여년 정도 된다고 최근 YTN이 보도 했다. 한편, SBS의 김수현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2007년에는 음악학자 이경분 씨가 독일의 여러 문서보관소에 흩어져 있던 안익태 관련 자료를 발굴 해석해 '잃어버린 시간: 1938~1944'를 발간한다. 이 무렵부터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독일 활동 시절 안익태의 대표작은 '한국환상곡'이 아닌 '에텐라쿠'다"고 밝히고 있다. 에텐라쿠(Etenraku, 越天樂)는 일본 궁중음악이다.
 더 자세한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라. (https://blog.naver.com/bbe8/221457705134)


◇'에텐라쿠'와 '강천성악'
 애국가에 관한 친일 행적자료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음이다.
 

안익태는 1938년 2월 더블린방송교향악단 객원으로 나중에 '한국환상곡'으로 알려지게 되는 자작곡 '교향적 환상곡 조선(Sinfonie Fantastique Korea)'의 초연을 지휘했다. 같은 해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에텐라쿠'(Etenlaku, Phantasie fur Orchester)를 발표했는데 그는 1959년 일왕을 찬양한 친일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강천성악'으로 개작했다.([자료] 안에키타이(あんえきたい) 친일 ,친나치|작성자 몽드메)


◇친일·친나치 의혹까지…안익태 애국가 논란 재점화
 2013년에 나는 안익태와 관련한 기사를 썼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비엔나 심포니 등 유럽의 유수 연주단체들이 '유럽에서 활동한 일본인 지휘자 에키타이 안'이 한국인 안익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료를 수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과 함께, 안익태가 1941년 일장기와 헝가리 국기가 나란히 걸린 부다페스트의 공연장에서 자신이 작곡한 '에텐라쿠'를 지휘하는 음악회 영상을 보도했다.


◇친 나치행적
 SBS에서 이해영 교수가 밝힌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바로 나치의 프로파겐다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안익태가 당시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가장 많이 연주(지휘)한 곡이 '만주환상곡'과 일본 궁중음악 '월천악'을 편곡한 '에텐라꾸'였다. 연주 장소가 100% 추축국 그 다음이 프랑스를 포함한 독일 점령국 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독일 나치의 전쟁 수행을 돕는 연주회를 지휘하였다.
 

안익태는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독일 점령국과 동맹국에서 30여 차례 공연하였는데 그 공연의 대부분은 독일 일본 협회'(독-일 협회, 혹은 일-독 협회로도 알려졌다)라는 양국 친선 우호단체에서 후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단체의 성격은 민간단체를 위장한 나치 외곽단체였다. 나치의 외무성과 선전성이 운영자금을 댄 이 단체의 지원으로 안익태가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수행했다는 것이다.(자료: SBS 뉴스, 이해영 교수 대담 요약-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34073&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또 하나 친나치 행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안익태가 에하라 고이치라고 하는 만주국 참사관집에 1941~44년까지 2년 반 동안 기숙을 하였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사람은 일본의 유럽 첩보망의 독일 총책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독-일협회 라고하는 민간단체로 위장된 나치당 외곽조직이 에키타이안 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였다.(자료: SBS 뉴스, 이해영 교수 대담 요약)


◇애국가의 기원과 의문들
 1919년 3.1운동 때에는 현 애국가가 아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의 멜로디에 윤치호 작사로 추정되는 현 애국가 가사를 붙인 곡이 대대적으로 불리었다.(자료: The truth about Korea, C. W. Kendal. 1931) 이 곡은 상해임시정부에 국가 대신으로 계승되었고 1935년 말 안익태가 새로운 곡을 붙인 현 애국가가 작곡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만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 연주되어 현재에 이른다.(자료: EBS,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0FAKV9iYn2U)
 

안익태도 초기에는 친일파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이해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35년께 미국에서 애국가를 초연할 때만해도 우리 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룖고 밝힌 적이 있다. 안익태가 본격적으로 친일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였다. (자료: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78375.html)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안익태가 독일에서 공연한 애국가와 연관된 동영상 들이 발견되면서 애국가의 창작 기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칼럼니스트 민성욱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안익태가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으로 일왕에게 바치는 곡으로 작곡된 '만주환상곡'의 일부이다. 원래 '만주 환상곡'으로 작곡되었던 곡을 해방이후 '한국환상곡'으로 바꾸어 발표하였으며 그 중의 일부가 현재 애국가 이다.룖(자료: 끝나지 않은 대일항쟁의 역사|작성자 민성욱 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53861)
 

음악학자 이경분 박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1938년부터 44년까지 안익태가 '한국환상곡'을 공연했다는 기록이 일절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8세기 일본의 궁정음악 등을 동기로 작곡한 본인의 작품 '에텐라쿠'(越天樂)와 '교쿠토'(極東)가 주요 레퍼토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씨는 "안익태가 이 곡들을 각각 '강천성악'과 '한국환상곡'으로 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자료: 에키타이 안|작성자 realjoys)


◇안익태 애국가가 지금까지 한국국가로 연주되어온 이유
 작곡자의 행적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현 애국가를 지금까지 불러온 이유는 바로 안익태의 베를린 친일, 친나치 행적이 60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친일 행적은 2000년 이후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70~80% 정도 알려졌다고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YTN에서 말하고 있다.(자료: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34073&plink=ORI&cooper=NAVER)
 

정리하자면 안익태도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그이 행적인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애국가의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최근 10여 년 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고 특히 독일 활동의 영상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애국가 계속 이대로 불러야 할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친일 친 나치행위로 삶을 살은 음악가의 작품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애국가로 부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역사의식과 바른 민족정신이 있다면 그런 배경을 가진 작곡자의 음악을 국가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국가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 쉬운 일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자긍심을 가지고 애국가를 불렀던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겠는가? 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았던 몰랐던 70여 년간 익숙히 애국가를 불러온 많은 사람들을 이해를 구해야하는 일이며 지금 이런 안익태의 친일 사실이 밝혀진 이 후에도 애국가를 바꿔서는 안된다는 약 59%의 사람들(2019년 2월 조사: 애국가 '바꾸자 24.4%, 반대 58.8%'(자료: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5092589)을 설득해야하는 큰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몰랐을 때는 그냥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진실이 밝혀진 이상 어렵더라도 애국가를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 개인 음악가의 개인적인 도덕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 관한 문제이다.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삶이 작곡한 곡을 이 나라의 애국가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미처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위선자의 애국가를 불러 온지 벌써 60, 70여 년이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이 나라 이강산 후손들에게 제대로 이 나라와 역사의식을 물려주고자 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루빨리 새로운 애국가를 재정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 국가에서 60~70여 년간이나 불러온 애국가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이며 절대 작은 일도 아닐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하며 새로운 애국가를 찾는 과정 등 수많은 과정과 인내심이 필요한 국가적인 중대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타당하고 당위성이 있는 일이라면 어렵더라도 진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할 수 만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친일의 흔적을 지우고 민족혼을 바로잡는 것이 목숨 바쳐 이 나라 독립을 찾고자 했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
 하루빨리 이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고 새로운 애국가를 재정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김 용 규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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