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앞 물량 평소 1.5배…신선식품 고객 전화번호 없고 주택 착불땐 가장 난감"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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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  발행일 2020-01-17 제35면   |  수정 2020-01-17
대구우체국 택배 담당 우지헌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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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우체국 택배 담당인 우지헌 집배원이 '설 명절 우편물 특별수송기간' 첫날인 지난 13일 오전 차량에 택배를 가득 싣고 배송에 나서기 전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객입니다."

대구우체국 택배 배송 담당 우지헌 집배원(32)은 '택배 배송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16년 경북지방우정청에 입사해 대구우체국 우편물류과 택배 담당으로 근무한 지 2년이 되는 우 집배원은 매일 오전 7시 대구우체국 물류보관실로 출근해 3시간의 택배 분류작업을 마친 뒤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인 배송 업무에 나선다.

'설 명절 우편물 특별수송기간'인 지난 13일부터 오는 29일까지는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빠른 오전 6시다.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전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퇴근시간이 빠른 것도 아니다. 오후 6시가 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셈이다.


설 특별 수송 기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
3시간 이상 분류작업후 차량에 실어 배송 출발


특별수송기간 첫날인 지난 13일 대구우체국에서 만난 우 집배원은 오전 6시 출근했지만 설을 앞두고 물량이 쏟아지면서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3시간30분 이상 택배 분류작업에 할애해야 했다.

분류작업을 마친 우 집배원은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물품을 이동캐리어에 싣고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간다. 택배량이 많다 보니 혼자서 옮기기 힘들어 동료들이 서로 도와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층으로 내려온 우 집배원은 이동캐리어를 끌고 자신이 운행하는 배달 차량인 스타렉스 승합차에 택배를 차곡차곡 쌓는다. 평소 물량의 1.5배가 넘다 보니 시간도 그만큼 더 걸린다.

그는 택배를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하곤 모두 짐칸인 뒷공간에 실은 뒤 운전대를 잡고 힘차게 시동을 건다. 신참 직원 차량이어서일까, 스타렉스 차량의 시동은 한 번에 걸리지 않고 약간의 틈이 있다. 하지만 우 집배원은 이날도 미소를 잃지 않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마음으로 첫 코스인 삼덕동2가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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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첫 배달을 시작하는 삼덕동2가는 경대병원 정문에서 대구지하철 2호선 경북대병원역까지로, 원룸 등 빌라가 많아 고객과의 대면이 거의 없어 택배기사에게는 힘든 지역으로 분류된다.

우 집배원은 "삼덕동2가는 낮에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택배를 문 앞에 둘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분실사고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1년 정도 택배 배달을 하다 보면 고객들의 성향이 파악돼,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아도 현관 앞 등 물품 배달 장소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진상 고객이다. 그는 "냉동·냉장식품이라 빨리 상하는 식품인데도 택배 포장에 전화번호가 없고 일반주택에다 착불일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면서 "이럴 경우는 옆집, 앞집 문을 모두 두들겨 부탁 부탁을 해 물품을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우 집배원은 "제발 택배로 물품을 주문할 때는 전화번호만은 꼭 기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나마 이런 고객은 양반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룸·빌라 많아 힘든 지역 알려진 삼덕동 2가
주문 고객 전화번호 꼭 기재해야 사고도 예방


"한 번은 오피스텔로 택배 배달을 나갔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메시지에도 답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경비실에 맡겨 놓았는데, 그날 퇴근하고 나서 받은 문자메시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욕설까지 담은 문자 내용은 '큰 물건 이거 내 것 아니니 가져가라'라는 것이었다. 퇴근 후라 제 차로 다시 가서 확인해 봤더니, 경비실에서 당사자인 2320호 고객에게 2420호 물품을 잘못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고객에게 '택배 물건을 한 번 확인만 해 봤어도 제가 다시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과 같은 것은 받지 못했다. 자초지종에 대해 제대로 확인도 해 보지 않고 무작정 택배 기사에게 욕설을 하거나 상대방 인격을 무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고객을 가끔 볼 때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라는 생각마저 든다."

택배 배송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다고도 귀띔했다.

"첫 코스가 삼덕동2가인데, 마지막 코스인 봉산동 고객으로부터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무작정 자기 택배 물품부터 배달해 달라는 등 우리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이럴 때 정말 힘들다. 어떤 고객은 대구에 있는 집 주소로 물품을 주문을 해 놓고 직장이 있는 경북지역으로 배달을 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택배 기사는 심부름센터 직원이 아니다."

오전 시간 삼덕동2가 배달을 마친 우 집배원은 점심 식사를 위해 배달 지역 바로 건너편인 경북대 간호학과 학생식당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평소에는 삼덕동2가 택배 배달을 마치면 식사를 한다. 설과 추석 특별수송기간이면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명절 직전에는 굶을 때도 있다. 특별수송기간이지만 이날은 첫날이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뷔페식인 이 식당의 음식값은 4천원이지만 양도 많고 맛도 있어 우 집배원은 늘 이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택배 기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기사들이 많다. 이날도 대구우체국 택배 직원들을 만나 5분의 커피타임도 함께 했다.

다른 택배 업체 기사들과도 대화를 나눈 우 집배원은 '우체국 택배 직원들이 일반 업체의 택배 직원들보다 조금 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J, 한진, 로젠 등 다른 택배 업체 기사들은 물량이 많은 대신, 배달 구역이 좁아 이동이 적은 편이다. 우린 택배 물량이 조금 적긴 하지만 구역이 넓어 이동 거리가 많아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덜 힘들고를 따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택배 배송을 할 때마다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 집배원은 고객에게 듣는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진상 고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한 고객은 배송 전화를 하면 '5층까지 올라오지 말고 물품을 1층에 놔두고 가면 된다'고 하는가 하면, 원룸 4층의 한 고객은 '원룸 바로 앞 편의점에 부탁드렸으니 편의점에 택배 물품을 맡겨 달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내온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고객들의 전화나 문자를 받을 때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살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턱대고 욕설, 인격 무시 메시지에 회의감도
명절 다가올수록 바빠져 빵·우유로 점심 때워



그러면서 우 집배원은 택배로 물품을 받는 고객들이 작은 것 하나만 실천해 주길 바랐다. 다름 아닌 택배 직원들이 보내는 '택배 수령 희망장소 선택 메시지'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대부분의 택배 회사 기사들이 물품 배달 전 고객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상품배송 안내를 하고 있다. 배송 시간을 알려주고, 고객들이 상품 수령이 편한 장소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번 배송주소에서 직접 수령, 2번 경비실, 3번 무인 택배함, 4번 현관(문) 앞 등이다. 1번에서 4번 중 하나만 선택해 문자메시지 답변만 남겨도 택배 기사들은 엄청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고객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택배 기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사 건네는 고객 말 한마디 피로·스트레스 풀려
물품 수령 희망장소 선택 메시지 답변, 큰 도움


오후 배달 코스인 대봉동과 봉산동을 다 돌고 난 우 집배원은 오후 6시쯤 대구우체국에 도착한다.

평소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하는 우 집배원은 특별수송기간인 이번 주와 설날인 다음 주 토요일은 꼼짝 없이 근무를 해야 할 처지다. 2년 전 결혼해 맞벌이 부부인 그는 "우리 팀은 다행히 토요일 격주 휴무지만 3주에 토요일 한 번만 쉬는 팀도 있다"면서 "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하늘이다. 토요일은 물론이고 밤늦게까지 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집배원 일몰 전 귀가 조치' 등의 복지 혜택이 늘어나면서 점심시간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택배 기사라는 직업이 휴일도 반납해야 하는 등 일도 힘들지만, 고객과 직접 대면하거나 통화·문자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 게 사실이다. 고객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 택배 기사들에게는 어떤 보약보다 더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오후 6시30분쯤 대구우체국을 나선 우 집배원은 이날도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다.

글·사진=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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