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눈과 마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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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0 08:00  |  수정 2020-02-10 08:00  |  발행일 2020-02-10 제23면

윤종주
윤종주<화가>

여전히 미학이나 철학서를 읽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펼친 책은 여간해서 책장이 잘 넘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전 한 평론가가 추천한 책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 책은 메를로퐁티의 '눈과 마음'이다.

'눈과 마음'은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현대철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마지막 저서이다. 이 책은 회화에 대한 에세이다.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문학적이며 시적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회화란 무엇인가, 시지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게 보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의 차이는 뭘까? 책 제목 그대로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사물을 과학적 틀, 즉 빛에 의해 굴절된, 혹은 반영된 사물의 이미지가 우리 눈에 비치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눈이라는 생체기관에 생각을 실어 사물을 지향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시각(視覺)이라 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을 시지각(視知覺)이라 한다.

나아가 시지각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다. 마음으로 세계를 봄으로써 시지각이 형성되며, 그것은 사유작용으로 내재성과 관념성의 세계를 마음 앞에 세우며, 자신의 움직임은 시지각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시지각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귀착된다. 시지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창문을 열고 우주를 내다본다. 시지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세계를 내 마음대로 배열한다.

화가는 시각이 아니라 시지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시지각에는 통찰력이라는 더듬이가 달려 있다. 이 더듬이로 화가는 우주의 질서를 읽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암호를 캐낸다. 그리고 자기 몸을 세계에 빌려주고 세계를 회화로 바꾼다.

진정한 화가는 자기가 선호하는 문제와 늘 씨름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다른 모든 문제의 조건을 건드린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림은 침묵의 소리이며 언어이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도, 색과 형태로 화면을 채우는 일도 쉽게 그림이 될
수 없음을 생각해본다. 이 책은 화가의 책임과 자부심을 깊게 일깨운다.윤종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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