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여행의 모든 시간들

  • 이은경
  • |
  • 입력 2020-02-13 08:04  |  수정 2020-02-13 08:10  |  발행일 2020-02-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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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만 남았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아직 시작도 안 한 다음 학기 수업 걱정을 하고 있다. 하긴 나도 속으로 원고 걱정에다, 바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출장 일정과 회사 업무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 여정이 다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내 몸은 아직 여기 있고, 시간도 이곳에서 흐르고 있는데 생각은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나 보다. 아쉬운 마음에 오늘의 시간들을 곱씹어 본다.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미슐랭스타 셰프가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 빨리 조식을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커튼을 열었다. 초록 잔디가 펼쳐진 그림 같은 정원이 눈앞에 있었다. 잔디 사이를 총총 걷고 또 날아다니는 새들, 내리쬐는 노란 햇살이 눈부셨다. 벽을 가득 채운 액자 같은 유리문을 열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맑은 바람이 들어오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늘색 수영장, 가로 놓인 새하얀 선베드에 눕자 그 모든 것들이 현실임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벌써 점심 때가 되었고, 이제는 근사한 식사가 예약된 레스토랑을 향했다.

택시를 타고 옐로와 브라운 컬러가 산뜻한 방콕 오리엔탈 만다린 호텔로 갔다. 블랙과 레드 컬러가 품격을 갖춘 중식 레스토랑에서 오찬을 즐겼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면 수영을 해야지. 마사지도 받으러 가야지. 그리고 저녁은 뭐 먹을까. 걱정 없이 느릿느릿 내 의식과 시간은 그렇게 막힘없이 쉬이 흘러갔다.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나 고민 없이 몸과 마음은 안정적으로 동기화되었고, 그대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Back to reality' 사람들은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환상을 끝내고, 현실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이다. 하지만 환상은 없다. 여행의 모든 시간은 다 현실이다. 시간은 산에서부터 계곡으로, 강으로, 큰 바다로 향해 가는 물처럼 그저 흐르되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환상이 아니라 과거가 될 뿐이다. 혹시나 일상의 시간이 여행을 떠남과 동시에 정지되었다가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는, 드라마 같은 환상을 품지만 않는다면 여행의 모든 것은 현실이다.

자정이 되어서야 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리도 마스크를 쓰고 맨 뒤로 가서 섰다. 수하물을 보내고, 보딩패스를 받아 게이트로 향했다. 우리의 오늘을 끝내고, 새로운 내일로 가고 있다.

이호원<다님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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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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