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성규〈시각예술가〉 |
6년 전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미술 그룹 썬데이페이퍼는 영천시 청통면에 '예술공간 거인'이라는 미술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거인이라는 이름답게 아주 큰 공간이라 그만큼 황량했다. 썬데이페이퍼 멤버 중 한 명이 이곳을 부모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는데, 비어있던 거대한 농산물 보관창고와 말들이 묵었던 마사, 조립식 집 한 채를 썬데이페이퍼 미술 그룹이 운영하는 대안공간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결정이었다. 작은 전시장 하나도 만들어 보지 않았던 우리는 켜켜이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못 쓰는 무거운 물건들을 버리고, 거대한 벽면을 고쳐서 그럭저럭 쓸 만한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버스도 많이 다니지 않던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고, 넓은 마당의 호두나무 아래에서 밤 늦도록 전시 뒤풀이를 가졌다. 전시를 하기도 힘들었지만 보러 오기도 힘든 이곳에서 우리는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가끔은 이런 무모함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 가는 은밀한 즐거움도 있지만, 너무나도 무모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을 실현해 보는 일은 즐겁다. 무모함은 현실적이지 않고 대략, 실패할 확률이 높을 뿐더러 성공한다고 해도 별로 남을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모함이 그리워진다는 건 서서히 나의 몸에 쌓여간 껍데기의 무게를 느끼기 때문일까?
유독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지금도 새로운 버스 길을 발견하면 매우 기뻐하곤 한다. 1996년 어렵사리 떠난 유럽 첫 배낭 여행길에, 샤갈의 그림을 보고 싶어서 떠났던 니스와 우연히 가보게 된 그곳의 마티스 미술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니스 근처의 방스에 있는 마티스가 말년에 작은 교회의 곳곳에 자신의 작품을 헌정한 '마티스의 작은 교회'를 찾아서 떠났던 그 길이 그립다. 6년 전의 '예술공간 거인'도 아득하게 문득 떠오른다.
2016년 썬데이페이퍼 미술 그룹이 주최한 '청년미술 페스티벌' 때 예술공간 거인의 마사에서, 오래된 농산물 저장창고에서, 마당에서 펼쳐졌던 청년미술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아련하게 생각난다.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무모함이 그리워질 때,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길거리의 흙먼지를 마시며,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이 느껴지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미술의 불을 지펴 올렸던 그 시간과 그 사람들이 떠올라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최성규〈시각예술가〉
이은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