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와인과 사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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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7  |  수정 2020-02-17 07:57  |  발행일 2020-02-17 제23면

윤종주
윤종주<화가>

오래전 와인을 함께 마시던 지인이 나에게 '샹볼 뮤지니'를 닮았다고 했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그 와인을 아직 마셔보지 못한 나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랑 닮은 와인은 과연 어떤 향과 맛을 가졌을까?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독립영화관에서 와인을 제공하여 마시면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사이드 웨이'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이미 많은 와인애호가들이 얘기했듯이 와인과 사람, 인생은 닮은 점이 많다.

와인의 매력은 완전히 똑같은 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같은 와인이라도 오늘 오픈하는 것과 일년 뒤 오픈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누구와 마시는지, 어떤 상황에서 마시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맛본다는 것은 와인의 숨겨진 비밀을 맛보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와인은 지역, 토질, 기온, 강수량, 양조법, 수확연도와 보관방법, 그리고 포도품종 등에 의해 결정된다. 토양을 기반으로 포도의 품종이 환경적 요소, 양조자의 손과 오랜 숙성의 결과로 우리의 테이블 위에 자신만의 향과 가치를 오픈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와인을 음미한다는 것은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충분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물을 쉽게 빨아들여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고, 포도 알이 커져 싱겁다. 반면 물이 적은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보다 깊숙이 뿌리 내리면서 철분, 미네랄 등의 양분을 흡수해 풍부한 열매를 맺는다.

때로 습한 환경에서 자라 귀부병에 걸린 포도는 건포도처럼 쪼그라들어 과연 와인이 가능할까 걱정도 되지만 아주 적은 양의 즙으로 만든 와인은 색다르고 향기로운 맛을 지닌 귀한 와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은 포도가 가진 본래의 향과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향, 그리고 오랜 숙성을 통해 얻은 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다.

이렇듯 훌륭한 와인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엄격함과 진실함으로 이루어진 신뢰의 상징인 것이다.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와인, 삶이란 것도 와인처럼 결국 오랜 숙성 후 최고의 순간에 마개를 오픈하는 게 아닐까?윤종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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