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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규 시각예술가 |
대구와 경북이 너무 아프다. 눈물도 나지 않을 두려움과 공포가 일상을 무너뜨린다. 코로나바이러스 19로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만 있다. 소설 속의 고립은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현실은 고통스럽다. 집에 있으면서 뉴스를 본다.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의 숫자만큼 공포감이 쌓인다. 사태를 슬기롭고 용감하게 극복해야 하는데 책임에 대한 갑론을박도 많다. 그래서 대구와 경북은 더 아프다. 큰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을 필요를 느끼는 모양이다. 표적은 억울함을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저급한 분노의 표현이다.
오래전부터 봉쇄된 도시 중국의 우한에서 4주 전에 찍은 영상을 유튜브로 봤다. 고립의 도시 우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갇혀 있는 시민들이 밤이 되니 비명을 지르는 영상이었다. 어설프게 촬영된 흔들리는 화면은 무서웠다. 눈에 보이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 19의 진원지, 고립된 공포의 도시, 하지만 함성은 답답함을 호소하는 비명이 아니었다. '짜요 jiayo' 라고 외친다. '짜요!'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더 붓는다는 뜻으로 '힘내!'를 의미한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불 켜진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격려하며 견디고 있었다.
문화예술 활동이 모두 멈췄다. 예술인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이 더해간다. 이토록 엄중한 시기에 예술을 생각하는 게 사치라고 할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예술은 어둠 속에서 힘차게 외치는 서로에 대한 응원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거칠지만 절실하게 촬영된 우한의 영상보다 아름다운 영상작업을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값을 치르게 한다. 세계는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가. 안과 밖의 균형 잡힌 사고와 정책은 얼마나 중요한가. 규모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의 가치는 얼마나 절실하게 다가오는가. 우리 사회의 그늘에 묻혀 있었던 폐쇄병동, 중증 장애인 시설이 바이러스의 위협에 무차별 노출되었다. 우리 사회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복지의 그늘이다. 인류는 어느 때 보다도 부유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 속에 우리를 가둔다. 그래도 우리는 공동체의 힘을 모으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따뜻한 감동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조만간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할 것이다. 예술은 분명 어려움의 시기를 기억한다. '분노의 표적'이 아닌 소외되었던 '사회의 그늘'을 기억한다. 우리 민족이 채 벗어 던지지 못한 비이성적 사상이 얼마나 맹목적인 신앙과 아집으로, 폐쇄성으로 공동체를 위협하는가를 기억한다. 예술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합창을 기억할 거다. 그렇게 어둠은 지나가고 우리들의 감동적인 삶은 지속한다.
최성규 <시각예술가>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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