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천은사(泉隱寺) 괘불탱화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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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7   |  발행일 2020-04-17 제37면   |  수정 2020-04-17
전염병 창궐때 마다 행하는 '괘불재'…듬직한 부처님 같은 의료진과 시민의식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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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泉隱寺) 괘불탱화', 삼베에 채색, 916.8×569.4㎝, 1673년, 전남 구례 천은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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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감염된 4월, 세계가 아수라장이다. 연일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공포가 가중된다. 가슴이 답답하다. 마음에 멍이 든다. 예로부터 환란과 공포를 다스리는 한 방편이 종교였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 조상들은 불교에 의지하며 괘불탱화(掛佛幀畵) 앞에서 괘불재(掛佛齋)를 지냈다. '천은사(泉隱寺) 괘불탱화'는 자연재해와 질병,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자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는' 불교회화다. 부처가 연꽃을 타고 세상으로 하강하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 놓았다. 부처가 구름과 바람과 별을 대동하고 이 땅에 나타났다.

자연은 매번 인간에게 경고음을 울린다. 조선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에 자연 이상 현상의 기간별 분포도를 보면, 불교 의식집(儀式集)이 활발하게 간행된 16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별이 떨어지는 유성, 해가 구름과 안개에 휘감긴 것처럼 보이는 일훈 현상, 천둥·번개 같은 전뇌, 예상치 않은 우박, 지진 등이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다. 불안한 사회현상이나 외적 침입, 질병 같은 내우외환, 홍수나 한발(旱魃) 같은 천재지변 등이 생기면 나라에서는 천도재(遷度齋)와 불교 의식을 개설했다. 각종 불교 의식에 사용된 탱화가 바로 괘불탱화다.

괘불탱화는 천도재, 기우제(祈雨祭), 방생재(放生齋) 등 야외에서 개최되는 의식에 사용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관련 깊은 의식은 영산회(靈山會)다. 영산회란 석가모니가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들려주는 설법 모임이다. 그 광경을 재현한 것이 괘불탱화이고, 그 의식이 영산재(靈山齋)다. 괘불탱화는 대부분 15m 이상의 길이에 폭 7~8m의 크기로 야외의식에 맞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불교 의식인 천도재는 조상을 천도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와 물과 육지에서 외롭게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수륙재(水陸齋)가 있으며, 영혼 천도를 위한 의식뿐 아니라 영산법회를 상징하는 영산재(靈山齋) 등이 있다. 괘불재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전염병이 돌 때 설행했다. 부처를 바깥에 내어 걸고 야외에서 펼치는 불교 의식으로,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재(齋)가 시작되는 날, 대웅전 앞마당에는 청정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오색등이 걸린다. 재단에는 음식과 꽃, 향, 차를 올리고 도량에는 화려하게 장엄을 한다. 북소리를 듣고 대중이 운집하면 부처가 대웅전 앞마당에 선다. 구성진 화청(和請)에 맞추어 바라춤과 나비춤이 신명나게 분위기를 돋운다. 축제는 절정을 향해가고, 대중은 살아서는 착한 업을 닦고, 사후에는 구원받기를 부처에게 기원한다.

'천은사 괘불탱화'는 근엄한 부처의 모습이 아니라 친근한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불교회화의 엄격한 형식보다는 화승(畵僧)의 창의적인 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화면에는 부처가 일체의 권속도 거느리지 않고 홀로 서 있다. 몸에는 연잎의 녹색과 붉은 연꽃 색의 대의를 걸쳤다. 몸에 비해 팔이 길어 보이지만 장대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맨 위쪽에는 매화점형(梅花點形) 무늬가 별처럼 밤하늘을 수놓았고, 원형으로 말린 구름이 사슴뿔처럼 길게 그려져 있다.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다양한 형태의 구름과 꽃무늬가 장식되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1673년에 제작된 '천은사 괘불탱화'는 삼베 바탕에 붉은색과 녹청색을 중심으로 군청색과 황토색 등을 곁들여 다소 단순한 느낌을 준다. 거신형 광배를 갖춘 부처는 양발을 벌린 채 붉은색의 연꽃을 밟고 당당하고 위엄 있는 자태를 취한다. 귀가 갸름한 얼굴을 감싼 덕분에 귓볼이 더 두툼해 보인다. 먹으로 눈의 음영을 처리하였고, 눈썹과 입술은 녹색과 붉은색을 칠해서 보색대비가 뚜렷하다. 볼과 목 부분에 분홍색으로 양감을 살려 음영으로 처리했다. 바탕에는 유사한 계열의 색으로 은은하게 처리하여 부처에게 시선이 모이도록 했다. 화면의 테두리 밖 하단 중앙에는 괘불탱화의 제작 시기, 봉안처, 발원 내용 그리고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17세기 후반에 그려진 탱화이지만 현대미술의 이미지를 풍기는 참신한 작품이다.

4월30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모든 행사가 멈추는 바람에 사찰에서도 행사를 한 달 뒤로 연기했다. 3개월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바이러스와 사투 중이다. 희망은 있다. 우리에겐 '천은사 괘불탱화'의 부처처럼 듬직한 의료진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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