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간답게 사는 것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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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1  |  수정 2020-06-01 08:05  |  발행일 2020-06-01 제21면

권효원
권효원<현대무용가>

몇 해 전 인상적으로 본 영화가 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영화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 앞에서 이 영화를 복기하고 소개하고 싶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일해온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하다 심장병 발작으로 당분간 일을 해선 안된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게 된다. 휴직하는 동안 국가로부터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간 그에게 절차는 너무나 복잡하다. 컴퓨터를 사용해본 적 없는 그에게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는다. 심사 기간은 몇 주씩 걸리고 담당자는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다른 이웃을 도우며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지낸다.

질병 수당 신청이 계속해서 거절 당하자 다니엘은 구직 수당이라도 받고자 직접 손으로 쓴 이력서를 제출하러 다닌다.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했다는 증명을 받아야 구직수당을 받을 수 있기에 여러 곳을 방문했던 그는 어느 작은 업체로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연락을 받는다. 하지만 다니엘은 심장 때문에 당장 일을 할 수 없다. 질병 수당과 구직수당 모두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는 관공서의 벽에 래커로 글씨를 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질병 수당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결국 그는 경찰에 연행되고, 집의 가구를 모두 팔고 냉골에서 지내게 된다. 평소에 그가 도왔던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류 준비도 모든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드디어 기다렸던 항고 날. 결국 그의 입에서 들을 순 없지만,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울림이 있었던 그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나는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이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권효원<현대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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