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안민열〈연극저항집단백치들 상임연출〉 |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의 걸작 '호모 루덴스'는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본질은 쾌락과 유희를 목적으로 한다는 그의 주장은 역사와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자신의 설득력을 강화한다. 그것은 단순한 즐거움도 있지만,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지향은 이성과 지성이 전제된 정신적인 창조활동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우리는 어릴 적부터 놀이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시장에는 채소를 팔기 위해 박수를 치며 "골라, 골라 잡아잡아 골라"를 연신 외치는 상인들이 있고, 하굣길에 가방이 무거워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친구에게 메게 해 지친 어깨를 쉬고는 했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한가지. 사람들은 왜 놀이를 만들까? 내 생각에는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함이라 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많은 요구를 받는다. 돈, 사회적 지위, 명예 등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타인보다 많이, 그리고 빨리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성공'이라 부른다.
하지만 성공은 쉽게 쟁취되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규칙 속에서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란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듯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는 보통 경쟁을 요구하지 않는다. 집단 속에서 치열함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의 결과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결과를 위해 달려가다가 과정을 잃게 되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순간 잃어버리거나 잊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놀아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놀아야만 살 수 있다. 현재의 삶으로부터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내가 원하는 세계를 직접 창조하거나 체험하는 순간. 그때 내 정신을 여과하고, 다시 살아갈 명분을 회복할 수 있다. 즐거움보다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대중이 노동보다 놀이를 갈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와 예술이 해야 할 역할도 충분히 발견 가능하다. 필자의 업인 연극이라는 행위도 문명화의 물결 속에 조그마한 틈을 열어 잠시나마 관객들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 무용, 춤, 스포츠, 대중문화라 일컫는 모든 축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놀 거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놀이터인 셈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 몸과 정신을 잠시라도 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놀이는 무엇입니까?"
이은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