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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
한 도시가 훌륭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예술가가 알아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 온 마을이 애를 써야 하듯 한 명의 훌륭한 예술가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도시가 애를 써야 한다. 예술가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이 많은 도시라면 좋은 예술가를 보유하는 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17·18세기 유럽의 상류층 자제들은 2~3년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을 둘러보는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이 시기를 견문을 넓히고 유럽 귀족 공통의 행동 규범이나 미적 감각을 익히는 기회로 삼았다. 소위 그랜드 투어라는 것인데, 그 결과 유럽 변방의 문화적 후발주자였던 영국은 주변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귀족 계급에서 촉발된 변화는 곧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고 도시와 국가의 문화적 소양이 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는 우리 도시가 청년 예술가들에게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면 좋겠다.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돌아와서 전에는 우리 도시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말이다. 한 3년에서 5년 정도는 작업하지 말고 도시가 주는 돈으로 좋은 것들을 보고 올 수 있도록 투자를 하면 좋겠다. 성장할 기회는 주지 않고 자꾸만 반복적인 작업을 하도록 강제해봐야 별로 좋은 것이 나올 리가 없다.
좀 더 실제적으로 제안하자면 지원 사업의 대부분이 돈을 받아 작업을 하고, 그 작품을 공개하는 일에 집중돼 있는데 그걸 좀 바꾸면 좋겠다는 거다. 해외에 축제를 보러 간다거나, 서울 등 다른 지역에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에 더 많은 지원을 하면 좋겠다. 우리 지역에서 하는 공연도 예술 전공자나 예술가들은 자부담 없이 보고 그 티켓값은 각 대학이나 재단 혹은 시가 부담하면 좋겠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뉴욕에, 런던에, 파리에, 도쿄에, 서울에 우리 시가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운영하는 공유주택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으면 좋겠다. '우리 도시의 젊은 예술가들이여 세계로 나가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돌아오라! 우리 시가 지원하겠다!'는 정도의 슬로건을 내걸고.
물론 지금도 베를린에 레지던시를 하는 프로그램이나 해외 축제에 참여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하지만 전체 예산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낮다. 뭘 많이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좋은 경험에는 돈이 든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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