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프로 불편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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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6 08:16  |  수정 2020-07-06 08:19  |  발행일 2020-07-06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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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현〈훌라 프로모터〉

"텀블러, 쌀빨대, 수저, 마스크." 집을 나서기 전 반드시 확인하는 소지품이다. 필요한 물건까지 더하면 늘 한가득 짐을 들고 다니게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좀 가볍게 다녀라,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느냐"는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듣곤 한다.

"저 종이컵 안 써요" "빨대 필요 없어요, 빼고 주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확실히 불편하다.

편리한 일회용기를 두고 굳이 불편하게 생활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너무 편하다"이다. 처음에는 나 또한 그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했다. 그때는 한국의 플라스틱 빨대 사용량이 전 세계 1위였을 때였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을 무렵이라 환경을 지키자는 거창한 뜻으로, 플라스틱제로 운동에 동참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이 생활을 해보니 내게 가장 큰 수혜가 돌아왔다.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를 또 언제든 마실 수 있다. 또 음료가 텀블러에 남아있는 경우에는 새로 주문하지 않아도 돼서 경제적으로도 절약할 수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사회적으로도 계속되어 왔다.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했고, 2022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을 35% 이상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주춤하고 있다. 위생문제로 개인컵 사용이 한시적으로 금지되었고, 일회용품 사용이 허용되었으며 배달음식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늘어난 일회용품 쓰레기는 또 환경을 오염시키고, 환경이 오염되면 또 어떤 바이러스가 발발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결국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기존의 편리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인컵이 금지되었을 때, 매장에서 제공하는 소독된 다회용컵을 사용했고, 다회용컵이 제공되지 않는 카페는 가지 않았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반찬통을 들고 가 담아달라는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못했지만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은 모두 빼고 음식만 보내달라는, 소극적이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가족들은 적어도 나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화려한 잔소리들이 나를 감싸고 있지만, 나의 불편한 행동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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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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