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코로나19, 그리고 예술의 가치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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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3   |  발행일 2020-07-13 제27면   |  수정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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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과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이 함께 펴낸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는 예술의 기능을 크게 7가지로 나눴다. △기억 △희망 △슬픔 △균형의식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의 기능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삼켜버린 이때, 그들이 말한 예술의 기능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특히 몇몇은 코로나 속에서 예술의 힘과 가치를 새롭게 보여줬다.

예술의 '기억' 기능부터 보자. 인간은 중요한 사실을 잘 잊어버린다. 예술작품은 인간이 가진 기억의 한계를 보완한다. 카롤링거 왕조(751∼987)의 한 법령집은 "화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살려내야 하지만, 글로 볼 수 있고 서술될 수 있는 것은 화가가 대중에게 전달해선 안 되며 작가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술과 문학은 중요한 기억을 기록하는 기능을 가진다. 장바티스트 르노의 그림 '미술의 기원-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디부타데스'는 이를 쉽게 확인케 한다. 그림은 사랑에 빠진 여인이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연인의 모습을 잊어버릴까 걱정하는 여인의 애틋한 심정이 잘 녹아있다. 사진처럼 기록적 성격이 강한 초상화나 조선시대 계회도(契會圖, 관료의 계모임을 그린 그림)도 이런 역할을 했다. 유명한 1570년 작 '독서당 계회도'를 보면 정철, 이이, 류성룡 등이 그려져 있다.

'희망'과 '슬픔' 역시 예술이 가진 큰 기능이다. 인간은 희망을 쉽게 잃어버린다. 긍정보다는 부정에 더 함몰한다. 걱정이 많은 인간 심리에도 잘 나타난다. 어니 젤린스키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는 96%는 불필요한 걱정이고 단지 4%만이 걱정다운 걱정이라 강조한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잃어버린 희망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예술은 슬픔을 견디게 한다. 슬픈 일을 당한 이들은 나만 겪는 일이라 생각하고 쉽게 좌절한다. 하지만 전쟁 속에 피어난 문학, 미술작품은 슬픔이 나만의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살아있음을 사랑하기 위해선 비극, 추함, 부정적인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열렸던 대규모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비극이 공식적으로 공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성장'도 한다. 예술은 인류가 걸어왔던 지난한 길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예술 감상은 인류의 발자취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이는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성장하게 한다. 인류가 창조해낸 혁신적인 여러 도구처럼 예술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우리 능력을 확장시킨다.

세상 모든 것을 정지시킨 코로나 여파 속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가 그래왔듯 예술을 통해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가졌다. 최대 피해지역인 대구는 문화예술의 강한 힘을 보여줬다. 2월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한때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가 쏟아졌음에도 3월 초부터 무관중, 온라인공연 등을 펼쳐 극한의 슬픔을 희망으로 환치했다. 슬픔을 예술로 기억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미술관의 '새로운 연대'전에서는 코로나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을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미술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거점병원이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열린 '코로나19와 벌인 115일간의 사투'라는 사진전 역시 코로나의 아픔을 사진으로 되새김질시킨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하다. 그 예술을 만든 인간은 더 위대하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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